“너와 내가 하필 이렇게 만나야겠느냐.”
“미안합니다, 형님.”
18일 오전 김현철(金賢哲)씨 납치미수사건 수사를 맡은 서울 서대문경찰서 유치장.
15일 주범 오순열(吳順烈)씨를 붙잡은 강력3반장 강병조(姜秉朝·47)경위와 오씨의 공범으로 붙잡힌 이기본(李起本·42)씨는 18일 착잡한 표정으로 담배를 나눠 피웠다.
강반장과 이씨는 91년 나란히 서초경찰서 형사반장과 강력반장으로 부임해 2년간 동고동락했던 사이.
두사람은 특전사출신인 이씨의 첫근무지였던 청와대 22특경대에서도 2년간 한솥밥을 먹었다.
그런 인연때문에 주범 오씨로부터 “경관복장을 한 남자는 이기본”이라는 말을 들은 강반장은 몇번이나 그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황급히 이씨와 전화통화를 했다.
“동명이인입니다. 제가 아니에요.”
하지만 두사람은 결국 몇시간후 피의자와 형사로 얼굴을 맞대야했다.
강반장이 기억하는 이씨는 한때 잘나가던 경찰이었다.
이씨는 87년 대선당시 노태우(盧泰愚)후보의 광주유세때 돌멩이가 날아오는 가운데도 방패를 들고 후보를 지켰던 경호경찰관이었다. 이씨는 이 일을 계기로 대선이 끝난 후 일계급 특진도 하고 청와대 경비 근무도 할 수 있었다. 이씨는 서초서에서도 92년 유부녀 85명을 강도강간한 택시운전사 정태수사건을 해결하며 한때 유능한 강력반장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씨는 거친 말버릇과 안하무인의 태도로 한직으로 쫓겨났고 93년2월 용산경찰서 서계파출소장으로 가서도 물의를 일으켜 결국 그해 8월 옷을 벗어야했다.
“경찰관의 본분만 지켰더라면….”
강반장의 목소리에서는 고속승진한 경찰간부에서 초라한 납치범으로 전락한 이씨에 대한 회한이 묻어있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