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시작된 민영화 바람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95년부터 2000년까지 5년간의 민영화 규모는 1백개 국가에 걸쳐 2천억달러에 달할 것이다.”(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
대부분의 선진국은 기존 공기업집단의 반대를 극복하고 민영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 결과 민영화는 재정을 확충하고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대안으로 확인됐다.
개발도상국들도 경쟁력 강화와 외자유치를 위해 공기업 매각 경쟁을 벌이고 있다. 태국은 4월 공기업 매각을 전담할 ‘공기업민영화청’을 발족, 이미 국영 방콕은행의 정부지분 매각을 위한 가계약을 유럽 금융기관과 체결했다.
▼독점을 즐긴 공기업들〓민영화한 일본담배주식회사(JT)의 전신인 일본담배공사는 고비용 저효율의 전형으로 비난을 받았다. 일본담배공사는 전국담배경작조합중앙회 등의 압력으로 자국 농민이 재배한 잎담배를 국제가격의 3배에 사들였다. 잎담배 원료가격은 제조원가의 60%를 차지했다.
85년 공사가 해체되고 JT가 설립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JT는 외국산 잎담배 수매비율을 60%까지 늘려 제조원가를 떨어뜨렸다. JT의 매출액과 경상이익은 90년대 들어 꾸준히 늘어 95년엔 일본 10위권 기업으로 도약했다.
79년 마거릿 대처총리가 민영화의 시동을 걸 당시 영국의 공기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맥경화에 빠져 있었다. 공기업부문은 국내총생산(GDP)의 10%, 국내총투자의 14%를 차지했다.
역대 영국정부는 공기업의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한층 엄격하게 공기업을 통제했다. 그러나 공기업을 독점체제로 두는 한 생산성 수익률 가격 소비자만족도 등 모든 면에서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을 인식한 정부는 마침내 제도개혁의 칼을 뽑아들었다.
▼민영화, 피할 수 없는 선택〓영국은 재정적자와 강성노조 그리고 비효율이라는 만성적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대대적인 민영화정책을 폈다. 이후 영국이 ‘지속적으로 모방되는 영국의 발명’이라고 자랑하는 민영화는 전세계에 확산된다. ‘철의 여인’ 대처는 집권 13년간 영국석유(BP)를 비롯해 47개 주요 공기업과 수십개의 작은 공기업을 민영화했다. 약 94만개의 일자리가 민간부문으로 이전됐다.
독일은 자동차업체인 폴크스바겐과 독일텔레콤 그리고 연방철도 등 굵직한 기업을 민영화했다. 자동차산업의 세계적인 경쟁이 치열해지자 독일 연방정부는 보유하고 있던 폴크스바겐의 지분 20% 전량을 88년 매각했다. 책임경영체제를 구축, 자율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뉴질랜드는 정부의 고유영역이라고 여겨져온 부문까지 과감하게 민영화했다. 87년부터 국영기업은 물론 정부부문까지 매각한 것.
국영방송국은 뉴질랜드TV로, 산림청은 ‘뉴질랜드임업’으로 각각 간판을 바꿔 달고 민간의 새 주인을 찾았다. 철도청 국립병원 정부간행물인쇄소 항만청 등도 민영화했다.
▼수치로 확인되는 성과들〓영국 국가경제연구조합(NERA)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33개 주요 공기업이 민영화하면서 주식매각수입 세금 등으로 정부 재정에 87년까지 매년 80억파운드를 안겨줬다.
이경태(李景台) 산업연구원(KIET)부원장은 “민영화의 제일 목표는 경영효율화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국경 없는 경쟁체제에 대비토록 하는 것”이라며 “경제위기를 맞아 재정수요가 늘고 있는 우리 여건에서는 재정 확충의 의미도 크다”고 설명했다.
공공부문이 민영화하면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가격은 떨어져 공공서비스의 고객인 국민도 이익을 본다.
영국 감사원은 96년 “민영화 이후 통신과 전기 가스 수도 등의 서비스가 향상됐다”고 발표했다. 실질 전화요금은 민영화 이후 무려 49%, 가스요금은 20% 낮아졌다.
90년 9월 완전 민영화한 텔레콤 뉴질랜드의 주당 평균수익률은 90년 10.6%에서 91년 13.1%로 신장한데 이어 92년엔 15.2%로 더 뛰었다. 87년 우편 체신업무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작업으로 탄생한 뉴질랜드 포스트는 만성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민영화 과정의 시사점〓프랑스의 대표적 자동차업체인 르노의 민영화는 프랑스 공기업 민영화 가운데 소요기간이 가장 길었다. 르노는 93년 5월부터 민영화가 거론됐지만 정부 보유주식의 매각은 약 1년반 후인 94년 11월에야 이뤄졌다. 게다가 정부 보유주식 매각도 일부에 그쳤다.
결국 르노는 국가가 51%의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 국영기업으로 남았다. 르노를 민간기업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프랑스가 겪은 산고는 ‘갈 길이 먼’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우선 정부 내부에서도 대립이 있었다. 회사 경영진과 경제부 상공부 등 담당기관이 94년 중의 민영화를 주장하자 총리와 내무부는 정치사회적인 반발을 우려, 95년 5월 이후로 늦추자는 논리로 버텼다. 노동단체와 공산당 사회당은 반대를 위한 청원서 서명운동을 벌여 한달간 30만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그러자 정부는 국가 지분 80% 가운데 29%만 매각키로 하는 ‘부분민영화’방안으로 타협했다.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반대에 부닥치지 않은 나라는 하나도 없다. 단기적인 충격과 복잡한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민영화를 추진하는데는 정치적 이해를 조정하는 능력과 권한 그리고 리더십이 필수적이다.”(류상영·柳相榮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프랑스정부는 철강업체인 우시노 사실로를 민영화하기 위해 회사 경영진과 함께 노조를 상대로 고용 및 정년퇴직 등을 일부 보장하는 ‘사회협정’을 맺었다.
〈백우진기자〉woojin@donga.com
[민영화 원칙과 방식]
△일정을 명확히 제시하고 철저히 집행해 나감으로써 정책에 대한 신뢰감을 높인다.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한국의 경우 한 기업을 완전 민영화하는데 3∼4년씩 걸릴 것으로 예상되므로 예컨대 대상 공기업들을 10년에 걸쳐 4단계로 나눠 민영화한다.
△민영화의 반대명분이 약한 기업부터 민영화한다. 또 이해관계가 덜 복잡한 소규모 자회사를 민영화한 뒤 모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한다.
△상품성이 좋은 기업을 먼저 상장하거나 매각, 외국자본과 국내 비제도권 자금이 증시에 많이 유입되게 한다. 또 다수의 국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세밀한 매각방식을 개발, 적극 홍보한다.
△이미 상장된 기업이나 단순 매각할 수 있는 기업부터 민영화, 증시에 대한 물량압박을 완화한다.
(자료:삼성경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