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換亂)이후 금융권 경색으로 고사위기에 처한 지 9개월. 수십년동안 확장일변도로 ‘몸통’을 불려왔던 한국재벌들이 잇따라 종말을 맞고 있다.
18일 퇴출기업 발표는 국제통화기금(IMF)위기 이후 유명무실한 ‘그룹’간판을 붙들어온 한일 고합 효성 해태 등 중견재벌들을 사실상 해체시켰다.한일과 해태는 각각 한국 섬유와 제과산업의 한 획을 그었던 명가(名家). 그러나 재벌 특유의 확장욕으로 건설 상사 전자산업에 잇따라 손을 뻗치다 결국 가업(家業)마저 끊길 처지다.
효성 고합 거평 등도 1∼4개 기업으로 전락했다. 재벌이라고 부르기엔 면모가 너무나 궁색해졌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고층사옥만도 여럿 뒀던 이들의 영화는 온데 간데 없다. 부도를 낸 진로 한라, 대대적인 계열사 매각을 추진중인 쌍용 한화까지 감안하면 ‘30대 재벌’의 응집력은 이미 형편없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재벌(Chaebol)’은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몇 안되는 한국산용어의 하나. 재벌이 한때 선진국 기업들의 ‘경계1호’였던 것은 ‘문어발’이 상징하는 왕성한 사업다각화와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통해 세계시장에서 대단한 세력을 과시하며 급속히 점유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재벌체제의 정점에 있는 비서실(회장실). 전체 지분이 10%에도 미치지 않는 총수가 수십개 계열사를 자기회사처럼 호령하며 꾸려갈 수 있는 뒷받침이었던 이 ‘친위대’도 외국기업들엔 불가사의한 존재.
그러나 IMF체제는 재벌에 대한 평가와 그들의 운명을 한순간 뒤바꿔 버렸다. 차입의존 체질의 허약성과 중복생산의 후유증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재벌의 강점은 오히려 생존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돌변했다.
상호지급보증 내부자거래 등으로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를 키워온 재벌들. 그 연결고리가 이제는 한 계열사의 좌초에도 전 그룹이 흔들리는 ‘대마필사(大馬必死)’의 위기를 만들어냈다.
김대중(金大中)정권 초기 재벌들은 강력한 기업개혁 드라이브를 일과성 태풍으로 여겼다. ‘정권 교체기마다 한두번 겪은 일이냐’, ‘정권은 유한하지만 재벌은 영원하다’는 식의 반발. 상당수 재벌들은 이런 분위기속에서 정부가 요청한 ‘주력사업 위주 구조조정’을 핵심계열사 지분 일부를 떼주거나 사람 머릿수를 줄이는 소극적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1차 55개 퇴출기업에 이어 성장가능성이 희박한 대재벌 주력사들이 2차 퇴출후보로 오르내리면서 재벌식 ‘선단(船團)경영’은 사실상 끝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다. 우리 경제의 목줄을 잡고 있는 IMF 세계은행 등이 ‘재벌해체’를 유도하는 서구식 기업운영체제를 요구, 이제 재벌은 쇠락할 수밖에 없게 됐다. 30대 그룹가운데 5대와 4, 5개 그룹을 제외하곤 대부분 재벌사를 다시 써야 할만큼 기업세가 볼품이 없어졌다.
퇴출기업 발표에서 최소한의 상처를 입는 데 그친 5대 재벌들. 이들도 재벌해체란 거대한 역풍에 숨이 막히기는 마찬가지. 정치권의 반강제적 ‘빅딜’독촉으로 새로운 변신을 모색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이미 주요 그룹들은 비서실이 해체되면서 달라진 세태에 스스로 놀라고 있다. LG화학 이사회지원실에서 근무하는 A차장은 “요식행위로 거쳤던 이사회에 굵직굵직한 경영현안이 안건으로 올라 긴장할 때가 많다”고 말한다. 총수가 계열 회장단을 소집해 말 한마디로 그룹 대소사를 결정했던 관행이 서서히 퇴색한다는 지적.
재벌 비서실의 ‘끗발’도 옛날같지 않다. 5대그룹이 일제히 비서실 폐지에 나섰던 3월. 군소리 없이 회장실 인력을 받아줬던 유력 계열사 인사담당들은 하나같이 ‘우리도 사람을 자르는 판에…’라며 완강하게 버텼다.
경제성장의 주역이면서도 IMF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지목받는 한국재벌. 정부와 IMF의 압박, 국민의 개혁요구로 서서히 몰락하고 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