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몇몇 시중은행에선 때아닌 예금인출 소동이 벌어졌다. 이 소동은 국민회의 김원길(金元吉)정책위의장의 발언을 인용한 모신문의 ‘9개 은행 회생 불능’ 기사가 발단이 됐다.
사건은 이랬다. 18일 오전8시경 김의장은 국민회의 간부 간담회를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에 미달하는 은행 중 4개 은행은 외자도입에 성공해 회생가능하고 나머지 9개 은행은 어렵다”고 말했다.
김의장은 오전11시경에는 기자간담회를 갖고 “외자를 유치 못한 9개 은행의 경우 증자 등을 통해 자산건전성을 높이면 살아남을 수도 있고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다시 정리했다.
문제는 마감시간을 지키느라 김의장의 첫 발언만을 기사화한 모석간신문의 경우였다. “정부와 국민회의가 9개 은행을 ‘회생불가능’으로 판단, 이런 은행을 금명 피합병은행으로 판정할 방침”이라고 1면에 크게 보도했다. 이 신문은 피합병대상이라며 9개 은행 명단까지 실었다.
금융감독위원회의 부실은행 판정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이같은 보도가 나가자 해당은행에는 오후부터 고객들의 예금인출이 잇따랐다.
당장 돈을 빼내기 힘든 ‘기관예금’ 측에서도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은행권에서는 이 기사로 인해 이날 움직인 자금이 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김의장은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내 말이 와전됐다. 9개 은행을 모두 정리한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오해를 살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은 정치인의 발언에다 미묘한 기사를 단정적으로 보도한 언론이 시장에 얼마나 큰 충격을 줄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공종식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