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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돋보기 답사]자격루/만원지폐의 또다른 주인공

입력 | 1998-06-21 20:39:00


1만원권 지폐엔 무엇이 그려져 있을까. 앞면엔 세종대왕, 뒷면엔 경복궁 경회루.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1434년 세종대왕이 장영실에게 지시해 만든 물시계 ‘자격루’.

83년 화폐 도안 당시, 가장 비싼 1만원권에 자격루를 그려 넣은 것은 자격루야말로 세종대왕의 가장 탁월한 업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럼 경회루는 왜 들어간 것일까. 자격루는 원래 경회루 남쪽에 있었기 때문.

그렇다면 자격루는 어떻게 시간을 알렸고 얼마나 정확했던 것인가.

자격루는 다른 물시계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동시보장치를 갖춘 명실공히 세계 최첨단 물시계였다. 자격루는 2시간마다 한번씩, 하루에 12번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린다. 그리고 밤에는 종소리와 별도로 북과 징을 쳐서 시간을 알려준다. 12시마다 종을 치고 밤에는 북과 징을 치는 것은 서로 혼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2번의 종소리는 자(밤11∼1시·쥐) 축(오전1∼3시·소) 인(오전3∼5시·호랑이) 묘(오전5∼7시·토끼) 진(오전7∼9시·용) 사(오전9∼11시·뱀) 오(오전11시∼낮1시·말) 미(오후1∼3시·양) 신(오후3∼5시·원숭이) 유(오후5∼7시·닭) 술(오후7∼9시·개) 해(오후9∼11시·돼지)시에 울린다.

그런데 종이 한번씩만 울리니 그게 자시인지 축시인지 어떻게 알 것인가. 그래서 자시에는 쥐인형, 축시에는 소인형, 인시에는 호랑이인형이 자격루 시보장치 밖으로 튀어나오도록 만들어 놓았다.

밤시간은 더욱 세밀하고 정확하다. 5등분하여 초경(初更·대략 오후7시) 2경(오후9시) 3경(오후11시) 4경(새벽1시) 5경(새벽3시)마다 경의 수에 따라 북을 치도록 만들어 놓았다.즉 초경엔 한번, 2경엔 두번. 또한 각각의 경을 5등분(5점), 그때마다 징을 울려 알리도록 했다.

해가 졌으니 한양 도성의 성문을 닫겠다는 인정(人定·통행금지·1경3점)이나 해 뜨기 전에 성문을 연다는 파루(罷漏·5경3점)도 자격루의 시보에 의해 이뤄졌다.

자격루의 원리를 기록한 ‘세종실록’의 한대목. “숨었다가 때를 맞춰 번갈라 올라오는 인형들… 조금도 틀림이 없으니… 귀신이 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정확성은 물시계의 기본인 물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이를 통해 제때에 인형을 쳐올리는 완벽한 자동제어장치에서 비롯한다.

13년동안이나 자격루에 매달려 작동 원리를 밝혀낸 남문현 건국대교수의 설명. “커다란 물항아리에 담겨 있던 물이 우선 배수관을 거쳐 또다른 물항아리로 떨어진다. 물은 서서히 위로 차오르고 미리 준비된 잣대가 함께 따라 오른다. 그 과정에서 항아리벽에 대기하고 있는 작은 구리구슬을 2시간마다 움직여 시보장치기구 안으로 밀어넣고 그것은 다시 더 큰 쇠구슬을 움직인다. 그리고 이것이 쥐인형 소인형을 강하게 내리치면 인형이 밖으로 튀어 나온다.” 남교수와 문화재관리국은 원래 위치였던 경회루 남쪽에 자격루를 복원하는데 여념이 없다.

세종 당시의 자격루는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덕수궁에 전시 중인 것은 16세기에 다시 만든 자격루 중 물항아리 몇개(국보229호). 그것이 바로 1만원권에 들어있는 물시계의 모습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