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기사는 ‘집’에 짜다.‘집’이 곧 돈이니…. 흑백의 돌이 걷히면 사라지고 마는 가공의 집을 다투며 프로기사는 기뻐하거나 탄식한다. ‘반 집’차로 8천만원이 오가는 것이 승부의 세계다.
지난 달 이창호(李昌鎬)9단이 우승한 동양증권배가 그랬다. 결승4국에서 반 집을 이겨 종합전적 3대1로 우승한 그가 받은 상금은 1억2천만원. 4천만원의 준우승 상금을 받으며 유창혁(劉昌赫)9단은 새삼 ‘반 집’의 크기를 실감했으리라.
이처럼 집에 짠 프로기사들이 어쩌면 돈에 더 짤지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는 일화가 있다.
이창호9단은 선배인 A9단 B9단 C8단과 어느 날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을 들었다.
최연장자인 A9단이 먼저 일어서더니 계산대에 자기 몫에 약간을 더 얹어 냈다. C8단이 “낼려면 다 내지, 뭐요”하고 묻자 A9단은 “내 밥값하고 자네 몫 약간을 낸 거지. B나 창호는 나보다 훨씬 많이 버는데 왜 밥값까지 내 줘”하더란다. 이를 본 B9단이 “에이, 관두세요. 제가 낼께요.”하며 일괄계산. 시원한 성격인 그가 만원짜리 두장을 내니 거스름돈이 꽤 되었다. 뒤따라 나오던 이창호9단은 우물쭈물하며 그냥 지켜볼 뿐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프로기사들이 2만원도 안되는 돈을 놓고 그럴 수가…’하며 놀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주인공 이창호9단을 ‘구두쇠’로 단정하지는 말자. 가장 나이 어린 그가 수입이 많다고 앞장서 밥값을 치르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9단이 그러고 다닌다 치자. ‘돈 좀 있다고 재는 거야. 선배들을 뭘로 보고…’하는 소리가 당장 들릴 것이다. ‘한국식 계산문화’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예의가 아닌 것이다.
아무튼 프로기사들은 제 돈 쓰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바둑을 매개로 접대받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인 탓일까. 프로기사 C4단은 “프로기사 중 남들과 어울리며 제 돈 쓰는 사람은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란 말로 전반적인 분위기를 전한다.
이 9단도 예외는 아닐 게다. 평소 지갑에 넣고 다니는 용돈은 3만원쯤. 신용카드가 몇 개 있지만 아예 갖고 다니지 않는다. 용돈은 점심이나 책 또는 음악테이프를 사는데 쓴다. 택시도 안 탄다.대개 지하철을 이용한다. 그것이 시간맞춰 가는데 최선의 수(手)니까.
‘사회생활 9급’의 수줍음 많은 청년으로 아직 돈쓰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어린 시절 군것질도 몰랐던 그다. 바둑에 매달려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 가끔 전자오락실을 찾는 것이 전부였고 1천원이면 손가락이 아플 때까지 ‘적’들을 쳐부수곤 했다.
이9단의 공식대국 수입은 지난 91년 처음으로 1억원을 넘어 1억3천만원을 기록했다. 소득세와 기사회(棋士會)적립금으로 내는 5%를 뺀 순 수입만이다(이하 같음).
지난해는 9억3천5백만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세전 수입으로는 10억원을 넘은 것.
연도별로는 92년 2억원, 93년 3억5천만원, 94년 2억2천만원, 95년 3억3천만원, 96년 6억5천만원.
이9단은 95년 이후 상금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 우승상금만 2억원이 되는 국제기전이 생기면서 해마다 3억원이상 소득이 늘어났다.
올해도 소득 랭킹 1위가 유력하다. 올들어 6월말 현재까지 상금은 1억2천만원짜리 동양증권배와 기성 배달왕 대왕위를 휩쓸며 2억원을 넘었다.
“아니, 수입이 그만큼인데 자장면 값도 안낸다니….” 바둑팬은 이창호9단에 대해 다시 혀를 찰지 모른다. 알고보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지난해 말 이9단은 모 복지단체에 2백50만원을 기증했다. 최우수기사로 선정돼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를 한국기원에 맡겼는데 기원측이 이를 판 돈을 실명으로 기증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얼마전에는 동료기사들과 함께 불우이웃돕기에 참가해 1백만원을 내기도 했다.
수년 전부터는 가족들과 상의해 어떤 복지기관에 무기명으로 연간 3∼4회에 걸쳐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이9단과 가족들은 이런 일이 보도되는 것을 꺼린다. ‘유명세’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손을 벌리는 곳이 많아 몹시 신경을 쓴다.
이9단은 광고모델 출연으로 돈을 벌 수 있지만 이제껏 광고에 나간 적이 없다. 내성적인 그는 광고에 나가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주위에서 권유하면 “바둑에 전념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이야기는 예서 끝이다.
그의 ‘광고출연 사절’ 신조는 어쩌면 몇해 전 유창혁9단이 맥주광고를 했을 때 일을 전해 듣고 더 굳어졌는지 모른다. 유9단은 당시 “저도 맥주를 마셔요”란 말을 하는 15초 광고를 찍는데 8시간 넘게 걸렸다고 한다. 소탈한 성격인 그는 동료들에게 “야, 바둑보다 광고가 훨씬 어렵더라. 내가 다시 나가나 봐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른바 ‘앵벌이’성 후원 요청에 대해 이9단과 가족들이 냉정한 태도를 취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9단의 꿈과도 연관된다. 그는 기사들이 맘놓고 바둑공부를 할 수 있는 ‘이창호 바둑회관’을 짓고 싶단다.
“창호가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장소 문제는 신중히 결정해야겠지요.”
아버지 이재룡씨의 말이다. 당연히 고향 전주에 세워져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미정인 셈. 하기야 그는 ‘바둑인생’자체가 어디까지 이를 지 아직 알 수 없는 23세의 청년기사가 아닌가.
〈조헌주기자〉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