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들어 공기업 인사와 조직의 구조조정은 어디쯤 가 있을까.
▼여전한 경영의 비전문성〓건설교통부는 16일 한국도로공사 새 사장에 정숭렬(鄭崇烈)국민회의안보위원장을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4월말 공모 절차를 시작한지 한달반만에 나온 결과다.
정씨는 군수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육군중장으로 대통령선거 직전인 작년 10월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도공의 공모절차가 시작되기 전인 4월초에 이미 정씨의 도공사장 낙점설이 나돌았다. 도공 노조는 당시 낙하산인사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으나 요즘은 “반대하는데도 지쳤다”는 반응.
한국마사회장 자리엔 오영우(吳榮佑)예비역육군대장이 앉았다. 그는 1군사령관을 끝으로 예편, 대선 전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축산농가지원과 종마육성 등의 업무와는 거리가 멀다.
석유개발공사사장은 나병선(羅柄扇)국민회의서울성동갑지구당위원장. 예비역 육군중장인 그는 14대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가스안전공사사장에는 이인섭(李寅燮)전경찰청장이 임명됐다. 공사 주변에선 “가스와 인연이 없는 인물”이라고 요약한다.
최고경영자는 아니지만 서울신문 전무에 윤흥렬(尹興烈)씨가 발탁된 것도 화제를 낳았다. 언론계 경력이 없는 CF감독 출신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장남 홍일(弘一)씨의 처남이다.
새 정부는 공기업 인사에 있어서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특히 강조했다. 김대통령도 정부산하기관 인사와 관련, “내부의 우수인력을 기용해 사기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외부에서 영입하더라도 전문가들로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대통령은 “신세졌으면 한 자리 줘야 한다는 식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3월의 포항제철 주주총회에서는 유상부(劉常夫)전부사장이 회장에 선임됐다. 그는 국내 제철설비분야의 최고권위자이지만 김영삼(金泳三)정권 때 포철을 떠나야 했다. 아무튼 그의 재등장은 박태준(朴泰俊)자민련총재 사단의 포철 재입성을 뜻한다.
이후 자민련은 주택공사와 프레스센터 대한지적공사 가스안전공사 등을 ‘접수’했다. 주택공사는 자민련 사무총장을 지낸 조부영(趙富英)전의원이 맡았다. 프레스센터 이사장에는 자민련 대변인을 지낸 김문원(金文元)전의원이, 대한지적공사사장에는 최운지(崔雲芝)자민련고문이 임명됐다.
김대통령은 4월초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다녀온 뒤 공기업사장 공모를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도공사장에 국민회의 안보위원장을 내정한 것도 그 결과 중 하나다. 공모는 일부 인사를 영입하기 위한 포장술이었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전문성이 결여된 인물이 공기업 사장을 맡을 경우 조직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또 이들 경영자는 기업조직 내에서 ‘정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상쇄하기 위해 ‘당근’을 약속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중상위 간부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무기로 비전문가 최고경영자를 교묘하게 조종하려는 경향도 보인다.
반면 비전문가인 최고경영자가 이를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경영정책실패가 나타나기도 한다.
정치인 출신 경영자의 경우 필연적으로 ‘권력의 하부구조’일 수밖에 없어 경영에 정치논리를 덧입히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공기업 경영의 ‘고비용 저효율’이 깊어지는 결과가 빚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방만하고 ‘머리’가 큰 조직〓도로공사의 경우 4급 이하 영업직이 1천6백64명으로 전체 직원의 32.1%를 차지한다. 단순 반복업무를 하는 영업직의 비중이 그만큼 높다. 민간위탁(아웃소싱)으로 할 수 있는 △도로유지보수 △골재생산판매 △안전시설물판매 △전자통신시설유지관리 등을 자체적으로 하거나 자회사를 만들어 자리를 늘렸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별정직과 청원경찰 등이 1천2백29명, 댐이나 상수도의 현장시설을 관리하는 인력이 1천5백16명으로 각각 30%와 36%를 차지한다. 단순업무직이 전체의 66%인 셈.
주택공사는 주택건설과 다른 업무인 주택임대 및 관리인력이 1천7백80명에 이른다. 비핵심 인력을 내부에 붙잡아둠으로써 조직을 비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의 지적이다.
또 자체적인 연구인력도 2백47명으로 연구만 수행하는 △건설기술연구원(2백13명)이나 △한국개발연구원(2백74명)의 규모와 맞먹는다.
한국감정원은 간부에 해당하는 3급 직원이 30.2%, 4급이 34.6%로 4급 이상 간부가 64.8%에 이른다. 머리는 크고 몸통이 작은 기형적인 인력구조라고 지적된다.
한국토지공사는 전체 인력이 주택공사나 도로공사의 40∼45%이다. 그러나 본부조직은 △주택공사 5본부 26실 처 △도로공사 6본부 21실 처를 능가하는 7본부 24실 처를 두고 있다. 또 2급 이상 간부비율이 11.8%에 달해 △주택공사 8.2% △수자원공사 8.3% △도로공사 6.7% 등보다 머리가 크다.
▼노사의 ‘밀월’〓최근 취임한 한 공기업사장은 “들어와 보니 사용자와 노조가 겉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밀회관계에 있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무리한 임금인상에서 노사관계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대한석탄공사 차입액은 작년말 현재 4천9백억원에 달했다. 석공의 96년 실질임금 상승률은 23.4%였다. 특수직수당은 716%, 교육수당은 921%를 늘렸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인상률은 5∼8%였다.
일부 공기업의 평균 임금은 연봉기준으로 4천만원선. 이들 공기업의 경비직이 연봉 5천만원을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진기자〉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