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혼란스럽다. 22일 오후 강원 속초 앞바다에서는 북한 잠수정이 어망에 걸린 채 발견됐다. 23일 서울로 돌아온 정주영(鄭周永)현대명예회장은 바로 그 바다에서 유람선을 타고 금강산 유람을 실시하는 계획에 대해 북한측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도대체 관계가 풀리는 건지, 꼬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긍정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남북관계는 확실히 진전이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북한은 비록 비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는 하나 베이징(北京)차관급회담을 먼저 제의해 왔고 지난 몇년간 긴장고조의 장으로 선전해 왔던 판문점의 빗장도 정명예회장의 방북을 위해 열어주었다. 또 23일 판문점에선 유엔사와 북한의 장성급회담이 7년만에 재개됐고 세계 유수의 기업인들을 상대로 한 대한(對韓) 투자설명회 행사도 열렸다.
이뿐만 아니다. 5월엔 리틀 엔젤스 공연단이 민간예술단으로는 최초로 평양을 방문했고 민예총도 8·15를 전후한 평양공연을 추진 중이다. 종교인을 비롯한 민간인들의 방북과 북한주민 접촉이 크게 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도 만만치 않다. 북한은 22일 8·15 통일대축전 판문점 개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다음달 2일 실무회담을 갖자고 제안한 정부의 대북서한 수령을 거부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실명(實名)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고 있지만 대남 비방과 공격도 종전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되돌아 갔다. 북한은 정명예회장이 북한에 소 5백마리를 준 사실을 주민들에게 아예 알리지도 않았다. 북한 언론이 월드컵 보도를 하면서도 한국의 출전 사실은 감추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한랭전선’으로 표현될 만큼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새 정부의 ‘햇볕론’으로 다소 풀리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풀리지는 않는 일종의 ‘불안정한 조정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냉전의 관성’도 작용하고 있다.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려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를 되돌리려는 반작용도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남북관계 조금씩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분석과 관측이 지배적이다. 개방과 개혁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하지만 북한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라도 과거처럼 경직된 냉전적 남북관계만 고집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외양의 혼란 밑으로 관계진전의 온난기류는 계속 흐르고 있는 셈이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