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은행 정리가 시작되자 예금자 은행직원 정치권 등의 제몫챙기기로 금융계 안팎이 극심한 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심화할 경우 이해당자자들이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 자칫 국가경제 전체가 공멸할 우려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예금자〓경영평가 대상이 된 12개 은행중 정리대상으로 거론돼온 은행은 물론 일부 조건부승인이 확실시되는 은행에서도 예금이 인출돼왔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위원회는 자산부채인수(P&A)방식에 따라 부실은행이 정리돼도 △영업정지기간은 1∼4일로 최소화하고 △영업정지기간 중에도 어음 수표 등의 지급결제와 예금지급업무는 계속하며 △예금원리금은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보호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예금자 입장에서는 거래하는 은행의 간판이 부실은행에서 우량은행으로 바뀔뿐 별다른 피해가 없다는 것이다.
▼은행 직원〓피인수은행 일부 직원들은 행동요령까지 만들어 조직적으로 부실은행 정리를 방해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해당은행 직원들로서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므로 당연한 반발”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이같은 행동은 결코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금감위의 설명.
피인수은행 직원들의 방해로 인수절차에 차질이 빚어지면 예금자의 불안이 걷잡을 수 없게 돼 금융시스템 전반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 이렇게 되면 정상적으로 인수되는 경우보다 은행원 고용문제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금융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정치권〓정리대상 은행 선정을 놓고 정치권의 로비와 압력이 기승을 부렸다. 고려대 박경서(朴景緖·경영학과)교수는 “정치권의 입김으로 정리대상 은행이 바뀌었다면 형평성과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사례가 확인될 경우 정리대상은행 직원의 반발→예금인출 확산→금융시스템 붕괴 등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
정치권이 할 일은 따로 있다는 지적. 금감위 관계자는 “현행 금융산업구조개선법에는 계약이전 결정의 구체적인 절차 등에 관한 규정이 미비하고 부실은행 인수과정에서도 여러가지 법적인 문제가 산재해 있다”면서“금융산업구조개선법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출은행〓금감위는 올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모든 정상기업 여신을 연장하도록 했다. 그러나 은행권에서는 이러한 합의를 어기고 암암리에 기업여신을 회수해온 것이 현실. 은행들이 앞다퉈 여신회수에 나서면 기업부도가 늘어나고 그만큼 부실채권도 늘어나게 된다.
〈천광암기자〉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