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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스미 시게히코 도쿄대총장

입력 | 1998-06-28 19:49:00


불문학자이자 문명비평가로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꼽히는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61)도쿄(東京)대 총장이 연세대와 도쿄대간의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지난주 서울에 와 머물렀다.

3월 도쿄대 졸업식장에서 “그들(일본의 파워 엘리트 그룹)의 파렴치한 언동이 (권력지향적인)도쿄대 특유의 풍토를 반영하고 있다면 우리 모두 이를 깊게 반성해야 한다”고 따끔하게 지적, 일본 관계와 재계 엘리트들을 움찔하게 한 장본인이다. 25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

―총장께서는 도쿄대출신 엘리트그룹의 부패에 대해 비판했다. 한국에서도 현재 IMF위기를 불러온 것이 명문대출신 엘리트들의 오만과 부패에서 비롯됐다는 견해가 많다.

“부패는 국민의 감시의 눈이 약해지면서 생겨난다. 또한 어떠한 조직이든 자급자족이 가능해질만큼 비대해질 경우 부패가 곰팡이처럼 피어난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 외부로부터의 감시의 눈이 필요하다. 그것이 외국인들이어도 좋고 혹은 객관적 관찰자여도 괜찮다. 그런 감시의 눈을 배제하면 반드시 부패한다.”

―요즘 본질을 통찰하는 지성보다는 정보로서의 지식이 우선시되는 풍토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세기말 지성인의 자세는 과연 무엇인가.

“두가지 지식인을 말하고 싶다. 하나는 19세기적 지식인, 즉 세상을 계몽선도해가는 지식인이다. 이런 지식인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든지 국민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점을 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지식인은 이제 시대착오적 존재다. 앞으로의 지식인은 한사람 한사람의 작은 목소리를 묶어 커다란 고함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런 지식인은 네트워크로 묶인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도쿄대와 연세대간의 자매결연도 그런 점에서 의의가 있지 않을까.”

―대학이 현실지식의 ‘공장’으로 함몰돼가는 듯한 양상도 보이고 있는데….

“대학은 지식을 집적하는 장소다. 그런 지식의 집적이 반드시 지성을 드높이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지식이라는 것은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깊이 파고드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런 식의 지식탐구로 일반적 지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20세기는 통감하고 있다. 앞으로의 대학은 그런 전문지식인의 ‘지성’을 제고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