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30일 인촌(仁村)기념강좌 특별강연에서 백묵을 들고 강의실 칠판 앞에 선다. 또 강의후 청중들의 자유로운 질문에 응답하는 토론 형식으로 이날 특강을 진행한다. ‘진짜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특강을 위해 사전 원고를 준비하겠다는 청와대 보좌진의 건의를 물리쳤다. 그리고 당초 강연만 30분 하도록 돼있는 이날 일정을 변경, 강연시간은 20분으로 줄이고 예정에 없던 청중들과의 즉석문답을 30분정도 갖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예정된 공식행사에서 준비된 원고를 읽지 않고 즉석연설이나 즉석강연 또는 즉석문답을 하는 경우는 대체로 그 시점에서 국민에게 특별히 전할 메시지가 있는 경우라는 게 박지원(朴智元)청와대공보수석의 설명이다.
박수석은 28일 “어제(27일)대통령께 원고준비건을 여쭸더니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작심한 듯한 표정이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과 같은 ‘파격적인’ 형식은 청와대 관계자들도 의외로 받아들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대통령은 우선 현직대통령으로서는 국내대학 첫 강연이라는 점을 의식, 보다 현장감 있는 메시지 전달을 원하고 있는 것같다. ‘김대중대통령’이 아니라 ‘김대중선생님’으로 대학강단에 서고 싶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강연은 고려대 정책대학원이 주관한다.
김대통령은 무엇보다도 55개 기업 퇴출에 이어 사상 초유의 은행 퇴출을 앞두고 있는 등 경제개혁이 본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국난 극복을 위한 총체적 개혁의 방향을 지식인들과의 진솔한 토론을 통해 검증해 보고 싶어 하는 것같다.
김대통령은 아울러 이런 기회를 통해 자신의 개혁의지를 확산시키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분석. 뿐만 아니라 김대통령은 북한잠수정 침투사건으로 대북정책의 기조가 흔들리는 듯한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은 것같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김대통령이 강연주제를 당초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경제개혁을 중심으로’에서 ‘우리 민족을 생각한다’로 바꾼 것도 국정전반의 당면현안에 대한 포괄적인 강연과 토론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채청기자〉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