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구호가 남의 일같지 않습니다.” 그룹 회장실에서 일하고 있는 임직원들은 회장비서실의 달라진 위상을 이렇게 말한다. 시쳇말로 지금까진 회장 비서실에 있으면 ‘끗발’도 있고 인사를 포함해 여러가지로 메리트가 있었지만 이젠 옛날같은 특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계열사에 임원으로 승진하려고 해도 법적으로 까다로운 제약이 있고 더욱이 정부가 내부거래에 대한 감시를 대폭 강화하면서 전체 계열사에 대한 총수의 친정체제가 점점 어렵게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기업의 지배구조 자체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회장을 받쳐 줄 손발이 사라진다〓그룹내 최고 파워엘리트로 구성되어있던 비서실 기조실 조직이 축소되고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 올들어 그룹마다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하면서 우선 회장실 인력부터 크게 줄였다. 대부분 그룹 회장실이 한시적인 생명만을 보장받은 ‘구조조정본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또 일부는 회장이 주력계열사의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1,2개 계열사 경영을 지원하는 업무만을 맡고 있다.
삼성 현대 대우 LG 등 주요 그룹의 회장실 조직은 연말과 비교할 때 평균 30%이상 인력이 줄었다. 삼성은 비서실을 해체하는 대신 삼성전자에 의전과 비서기능을 담당하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회장실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2년여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구조조정본부가 종래의 회장실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존속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주요 그룹 홍보실 직원들은 일제히 그룹내 홍보대행사로 소속을 옮겼다.
현대그룹 문화실은 금강기획으로, 삼성은 제일기획으로, LG는 LG애드 소속으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예전처럼 위세당당하게 계열사에 업무를 지시하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협조 업무만을 담당하기도 힘에 벅차다.
▼가진 만큼만 지배해야 한다.〓재벌 총수들은 자신의 지분 이상으로 그룹 경영을 좌지우지함으로써 개별기업의 독자경영이나 건실한 성장을 가로막고 심지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30대 그룹 총수들의 실제 계열사 지분율은 평균 3.26% 정도. 총수 지분에 친인척 지분을 합해도 6.55%에 불과한 게 현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만해도 그룹총수들은 계열사 1백90개중 65개사에만 임원으로 올라있었다. 막강한 권한행사에 비해 책임은 별로 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올해들어 활성화된 사외이사제도나 소수 주주권 행사 운동은 앞으로 가진만큼만 지배하라는 요구를 더욱 강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고양이 목의 방울은 스스로 달아야 한다.〓그룹 지배권에 대한 총체적 위기상황속에서 그룹총수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지난 3월 해외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의 경영권 참여요구 등을 비교적 깔끔하게 마무리지었다는 평가를 받는 S그룹의 예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요한 고비마다 부닥치는 문제들을 경영수업을 받고 있던 재벌 2세가 직접 나서서 풀었기 때문에 원만한 해결이 가능했다는 주변의 평가였다.
“대부분의 재벌개혁과 관련된 문제는 오너의 고독한 결단과 양보를 요구합니다. 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하자는 얘기를 그룹내부에서 총수에게 직접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 그룹의 지배구조를 포함한 일대 경영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은 그룹 총수 스스로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결론이다.
〈김승환기자〉shean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