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9시 김포공항. 일본 소니가 세운 애니메이션 영화사 ‘드림픽처스 스튜디오’에 첫 출근하기 위해 도쿄(東京)행 비행기에 오른 임창진(任昌珍·28)씨. 그림에 유난히 소질이 많았던 소년이 마침내 ‘컴퓨터화가’로 입신(立身), 일본시장에 도전장을 내러 떠나는 길이었다.
드림픽처스 스튜디오는 세계적인 전자업체 일본 소니가 게임기업체 컴퓨터그래픽사와 함께 지난해 3월 설립한 벤처기업.
올해 말까지 직원 수를 2백명으로 늘려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 영화 광고 위성교육 CD롬콘텐츠 사업에 본격 진입, 일본 열도는 물론 세계시장을 장악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임씨가 맡게 될 일은 애니메이터들을 이끌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술감독. 고난도 컴퓨터그래픽 기술에 훤해야 하는 만큼 임씨의 초기 연봉은 대략 1억원선.
“화가하면 곰방대 물고 담배피는 사람들만 생각했었죠. 아들 인생을 망치겠다 싶어 어렸을 적엔 그림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별 것 아닌 아들이 신문에 나는 게 부담스럽다’며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임씨의 어머니(56). 유치원 시절부터 각종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타오곤 했던 아들의 ‘재주’가 기특했지만 결코 화가를 ‘평생 업(業)’으로 시킬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임군은 부모의 뜻대로 89년 한양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공식으로 가득찬 공학서적을 뒤적거리면서 못다한 그림에 대한 갈증은 더욱 깊어갔다. 결국 석달만에 휴학계를 냈다. 완고했던 부모도 ‘그림에 인생을 걸겠다’는 임군의 각오에 이번엔 손을 들었다.
96년 봄 서울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임씨는 곧바로 국내 최대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업체였던 비손텍(지난해 부도)에 입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워크맨과 음료수캔이 한데 어울려 춤추는 아하프리 애니메이션 광고 등이 임씨의 작품. 애니콜 팔도쇼킹면(麵)광고 등 한달에 2개꼴로 작품을 만들었다.
당시 미국 영화가를 강타한 작품이 픽사르사가 만든 ‘토이 스토리’. 컴퓨터 그래픽만으로도 훌륭한 흥행영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세계적 히트작이었다. 임씨가 지난해 12월 소니의 문을 두드린 것도 이 영화의 성공에 고무됐다.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드림픽처스의 채용광고를 보고 일본시장 도전을 결심하게 됐다.
토이 스토리 한편으로 단번에 옛 명성을 되찾은 스티브 잡스(애플컴퓨터 창업자)의 신화를 일본에서 재현하겠다는 것이 그의 꿈.
3단계 면접을 통과하고 드림픽처스 스튜디오사와 채용계약을 한 것이 올해 3월.
그러나 임씨에겐 아직은 ‘1억연봉’이 솔직히 부담스럽고 두렵다. 그가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 훌륭하게 터를 닦을지는 아직 안개속. 처절한 실패를 안고 귀국길에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시장을 상대로 끊임없이 실력을 담금질하는 임씨의 외길 장인정신 속에서 ‘우물안 개구리’였던 한국경제의 미래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