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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천 前서울대총장 별세]유신정권에 맞선 대쪽선비

입력 | 1998-07-02 07:22:00


유기천(劉基天) 전 서울대 총장이 지난달 27일 오전 9시30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심장수술 후유증으로 별세한 것으로 1일 알려졌다. 향년 83세.

유족들은 “고인이 유언을 남기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으나 생전에 후학들을 위해 소장 도서와 전 재산을 서울대에 남기겠다고 말한 고인의 뜻을 받들겠다”고 밝혔다.

고인은 1915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예일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46년부터 72년까지 서울대 강단에 섰고 65∼66년 서울대 총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형법학’ ‘한국형법전’이 있다.

‘법학의 대부’로 불리던 고인은 특히 박정희(朴正熙)독재정권에 대한 잇단 비판 발언으로 당국으로서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 71년말 서울대에 군인들이 진입한 것을 두고 “대통령이 그런 명령을 내렸다면 탄압죄에 해당되며 그럴 경우 대통령은 탄핵을 거쳐 수감돼야 할 것”이라고 따지거나 10월 유신을 앞두고 “정부가 총통제를 획책한다”고 폭로, 주변의 갖은 협박에 시달렸다.이로 인해 72년 1월 교수직에서 파면되어 미국으로 건너가 사실상의 망명 생활에 들어갔으며 78년 샌디에이고 법대에 초청받은 것을 계기로 샌디에이고에 자리잡았다. 80년 ‘서울의 봄’때 귀국해 서울대에서 형법을 강의했으나 5·17이후 다시 도미했다.

최근에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제자들과 법학연구재단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슬하에 자녀는 없으며 유족으로는 형 기선(基善)씨 등 5남매가 있다.

유족들은 경기 고양시 가족묘지에 93년 사별한 부인 헬렌 실빙 여사와 합장할 계획이며 15일 오전 11시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교회에서 고별 예배를 갖는다. 02―3476―5599

〈허 엽기자〉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