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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총장들의 직선제 반대

입력 | 1998-07-05 19:54:00


전국의 대학 총장들이 대학교육협의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총장직선제의 폐해를 개탄하고 이 제도의 폐지 또는 개선을 결의했다는 소식이다. 세미나 참석자 중에는 직선제로 총장에 선출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직선제를 성토하고 나선 것은 이 제도가 그동안 대학사회에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초래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80년대 중반 대학 민주화과정에서 도입된 총장직선제는 시행 초기 정치권력이나 사학재단의 전횡으로부터 대학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거가 과열되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교수사회가 후보자의 출신고교나 대학별 지역별로 사분오열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파벌 조성뿐만 아니라 상호비방 금품거래설 등 혼탁양상도 만만치 않았다.

총장직선제가 야기한 또 다른 부작용은 교수들이 학장이나 처장 등 보직을 부쩍 선호하게 된 점이다. 총장이 자신을 지지해 준 교수에 대한 보상으로 보직에 임명하거나 해당 교수들도 이를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대학교수의 보직비율이 급증했다. 국공립대의 경우 전체 교수의 29.5%, 사립대는 29.2%가 보직교수라는 조사도 있다. 직선제가 몰고온 교내 정치바람이 자리다툼으로 이어지고 정작 학문 연구는 뒷전으로 밀려난 불행한 결과다.

결국 대학 총장들의 이번 결의는 총장직선제가 우리 대학풍토에서 실패로 끝났음을 인정한 셈이다. 직선제에 따른 각종 폐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며 경제난국에서 비롯된 국가위기가 대학사회의 리더십에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 대학은 상당수가 자금난에 몰리는 등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이 살아남기 위한 총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 시점이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대학 총장들은 무엇보다 경영마인드를 지녀야 하며 행정능력과 대외교섭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교수들에게 인기있는 인물보다는 미래를 보는 눈과 대학운영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총장에 더욱 적합한 시대가 되고 있다.

다만 총장직선제가 교수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재단 견제기능을 갖는 등 나름대로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최근 상당수의 사립대학이 직선제를 폐지한 것은 재단측이 학교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된 측면도 있다. 이런 또다른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교수대표 동문 교직원 등이 망라된 일종의 간선제 기구를 만들고 이에 직선제의 장점을 보완하는 조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