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진품이야”
새벽 3시반. 김봉매할머니(68·충남 서천군 한산면)는 보따리를 안은 두팔에 더욱 힘을 준다. 보따리안에는 장날을 꼽아가며 지난 두달간 짠 자식같은 모시 한필이 담겨있다.
아직 어둑어둑한 꼭두새벽이지만 수십년을 한결같이 오간 길, 눈감고도 걸을 수 있다. 손으로 입으로 모시를 삼기 시작한게 올해로 60년째.
‘제값이나 받아야 할텐디’하는 생각이 굴뚝같으면서도 장에 내다 팔러 가는 길은 딸 시집 보내는 친정어머니 마음처럼 항상 허전하다.
“아이구, 일찍 나오셨구만유”
벌써 자리잡고 앉은 부지런한 아낙네들이 알은 체를 한다. 어둠속 목소리만 듣고도 뉘집댁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이번엔 좀 성기게 됐어유. 서울 큰아들이 회사에서 ‘짤려서’ 메누리(며느리)고 애들이고 다 내려와 있구만유. 뒤치닥거리하느라 당체 시간이 나야쥬”
하나둘 새벽장에 몰려든 아낙네들이 졸린눈을 비비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이다. 좌판대 한쪽에는 충남모시조합에서 모시가 한필(39자)이 되는지 확인하는 ‘검사필증도장’을 받기위해 아낙네들이 줄지어 서있다.
거친손, 주름진 얼굴, 몸빼바지에 아무렇게나 걸친 셔츠. 정작 모시옷을 입은 이는 하나도 없다.
슬레이트 지붕과 가느다란 버팀목으로 골격을 이룬 간이 좌판대 3동 한가운데 길다란 나무판자가 의자겸 놓여있다. 천장에 매달린 4∼5개 30촉 백열등. 그 아래 전국에서 몰려든 모시 도매상들, 흥정을 붙여주는 거간꾼들도 자리를 잡았다.
희뿌옇게 하늘이 밝아오는 새벽4시반. 백열등에 일제히 불이 켜지자 삽시간에 아낙네들이 불빛아래로 몰려든다.
도매상들은 마치 책장을 넘기듯 여러겹 필모시를 재빨리 만져본 다음 맨윗 한겹아래 손바닥을 대본다. 투명한 모시 홑겹아래 손금이 훤히 보인다. 한올 한올 고른지, 섬세하게 짜여졌는지 살피는 도매상들의 눈매가 맵다.
“23만원”
숨소리를 죽이며 도매상 입만 쳐다보던 김할머니는 도매상 한마디에 이내 야속한 표정이다.
“이런놈이 없당게. 을매나 정성껏 짠 것인디. 2만원만 더 주오”
“생각하느라고 했어. 싫으면 관두시구랴”
“모시굿(모시를 짤 수 있는 실타래묶음)값도 안 나오것네”
돈을 받아들고 돌아서는 할머니 걸음이 쓸쓸하다. IMF전에는 한필에 30만원은 거뜬했는데…
날이 밝아오기전 장을 끝내려니 사는이나 파는이나 마음이 바쁘다.
이쪽 저쪽 다니며 흥정을 붙여보지만 퇴짜만 맞고있는 아낙네들도 보인다. 아직 솜씨가 없어 성글게 짠 모양이다.
김할머니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모시 잘짜면 선 안보고도 데려간다”는 어머니 할머니 등쌀에 8살때부터 시작한 모시짜기. 전국에서 유난히 솜씨가 좋았던 한산 아낙네들은 시집가면 집안일과 농삿일을 마치고 졸음을 물리치며 엄한 시어머니와 함께 모시를 짰다. 그것을 팔아 농약 사고 자식들 학비를 댔다. 거친 모시풀을 입으로 벗기다보면 이가 조각나고 혓바늘이 돋고 입술이 헤져 피가 흘렀다.
어느새 날이 밝아온다. 왁자지껄했던 장터는 다시 조용해졌다. 아침밥을 지으러 총총히 돌아가는 아낙네들.
모시는 반드시 새벽안개속, 백열등 아래 비춰봐야 진품을 가릴 수 있다는 오랜 믿음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새벽 4시 한산모시시장.
기계와 첨단, 빠름과 변화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한산의 여인들은 그 옛날 그 방식대로 모시 한올한올에 그네들의 한과 희망을 고스란히 담아 새벽장터에 실어보내고 있다.
〈서천군 한산 새벽모시장〓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