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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한-러 냉각기를 가져라

입력 | 1998-07-09 19:34:00


러시아가 우리 외교관을 추방한 데 대한 맞대응으로 정부는 주한 러시아외교관 한명의 출국조치를 통보했다. 한―러간 외교관추방 공방이라는 위험한 게임의 공이 당초 일을 일으킨 러시아측에 넘어간 셈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우리측 결정이 취소되지 않으면 심각한 사태가 올 수 있다고 모스크바주재 우리 대사관에 경고했다고 한다. 점점 더 악화돼 가는 사태전개 양상에 우려를 금치 못한다.

러시아가 우리 외교관을 추가 추방할 경우 양국 관계는 심각한 국면에 빠져들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정부의 맞추방으로 러시아측은 감정이 상했을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나올 러시아정부의 조치는 감정적 대응의 성격을 벗어나기 어려울지 모른다. 이런 감정싸움이 상승작용을 한다면 어느 쪽에도 이롭지 않다. 두 나라가 함께 냉각기에 들어가느냐의 여부는 이제 러시아쪽 자제력에 달렸다.

우리정부의 러시아외교관 맞추방이 성급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위신을 지키기 위한 외교적 상호주의라는 측면에서 이는 불가피했다고 본다. 한―러관계가 90년 수교 이후 높은 우호협력관계로 발전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루아침에 깨고 나선 쪽은 러시아였다. 더구나 이번 외교관추방 사건의 내막은 양국 정보기관간의 마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보기관간의 갈등문제라면 물밑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옳았다.

우리 외교관이 국제법에 반해 러시아 정보기관에 연행돼 조사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국민감정이 얼마나 착잡했는지를 러시아 관련당국은 성찰해야 한다. 러시아 정보기관이 우리 외교관의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비밀촬영한 사진을 언론에 흘린 것도 한국내 여론을 자극했다.

러시아정부는 양국간 우호협력의 발자취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더 이상의 비우호적 조치를 멈추어야 한다. 다변화를 통한 한국외교의 균형정립과 동북아 안정에 기여해 온 파트너답게 한―러관계의 앞날에 대해 숙고하기 바란다.

두 나라가 동북아지역의 자원개발과 상호보완적 기업투자로 손잡고 나아갈 공영(共榮)의 길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남은 앙금은 막후대화로 해소하고 건설적 관계를 다져나가야 한다. 러시아는 96년에도 영국 및 노르웨이와 외교관추방을 주고 받았다. 그러면서 각각 두 나라간 외교관계의 큰 틀이 유지된 것처럼 한―러관계도 흔들려선 안된다.

마침 한―러 외무장관은 이달 말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만나게 돼 있다. 그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양국 관계의 문제점을 토로하고 개선안을 논의해야 한다. 양국관계가 비온 뒤 땅이 더욱 굳어지듯 성숙해지는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