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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관家 도예전]한수산씨 특별강연

입력 | 1998-07-09 19:48:00


《일민미술관은 ‘심수관가 도예전’을 맞아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전문가들의 특별 강연을 마련한다. 첫날인 8일은 작가 한수산씨가 일본에서 심수관씨를 만나 직접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 집안의 내력과 조선 도공 4백년사를 전했다. 다음 강연은 15일 오후 2시 홍종필명지대교수의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 수난사’》

‘4백년만의 귀향―일본 속에 꽃피운 심수관가 도예전’을 보면서 관람객들은 몇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우선 작품이 조선 백자도 고려 청자도 아닌 일본 것이며 과연 이게 명품이냐는 것이다.

이번 전시작보다 훨씬 우수한 심수관가의 명작들은 일본과 유럽 등지에 널리 퍼져 있다. 카이로 국립박물관도 그 중 한점을 소장하고 있다.

다만 이번 작품들은 후대의 도예 교육을 위해 보관했던 것들이다. 명작은 번주에게 바치고. 이런 점들이 심수관가 4백년사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은 가라쓰 아리다 사쓰마 등 세 곳에서 도예 문화를 일궈냈다. 일본의 도예는 한국의 정신과 손길로 이뤄진 셈이다. 이 점에 비추어 4백년이나 지난 오늘날 심수관가의 작품에서 한국의 냄새가 안난다고 비난하는 것은 난센스다.

심수관가가 종가인 사쓰마야키는 ‘구로 사쓰마’와 ‘시로 사쓰마’로 나뉜다. 구로는 검은 색의 도기이고 시로는 흰색. 사쓰마 지역은 화산 지대로 매우 척박하다. 흙에 유황 성분이 많아 구우면 검게 된다. 시로 사쓰마는 번주가 간절히 원했던 것으로 조선 도공들이 나중에 백토를 발견해 만들었다.

심수관가는 대대로 한국의 민족혼을 도혼(陶魂)과 함께 대물림해왔다. 이를 위한 심수관가의 가정 교육은 존경할 만하다. 옥산궁을 지어 단군을 모셨고 14대 심수관은 아들 15대를 한국의 이천에 보내 도예 교육을 받게 했다. 15대도 “가업을 잇는 것은 선대가 모범을 보인 덕분”이라고 말한다.

심수관가가 있는 미야마 도예촌은 찻집이나 술집이 하나 없는 한촌이다. 땅도 척박하다. 이런 곳에서 무려 4백년간 도예와 가업을 이어왔다는 것은 불가사의로 와닿는다.

〈정리〓허 엽기자〉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