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그룹 비리를 수사중인 검찰이 사법처리의 깊이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여야 거물 정치인들의 이름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은 지금까지 정치권 로비 혐의가 드러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히 진상을 밝힌다는 방침을 여러차례 밝혀왔다.
대구지검은 이같은 원칙에 따라 장수홍(張壽弘)회장 등 청구그룹 관계자들의 ‘움직일 수 없는’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물증확보를 위해 장회장의 비자금 계좌를 광범위하게 조사해왔다.
수사는 지난주 초 계좌추적팀이 장회장의 비자금 계좌를 발견한 데 이어 장회장도 돈을 준 정치인의 이름과 액수를 조금씩 진술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명예총재측, 김윤환(金潤煥)부총재측, 중진의원 서너명, 국민회의 권노갑(權魯甲)전부총재측 등 여야 거물급 정치인이 등장하면서 검찰은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고민에 빠진 것. 파헤치자니 거센 정쟁(政爭)으로 발전해 경제 살리기라는 국가적 과제를 거스르는 결과가 되고, 파묻자니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화근’을 떠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파헤치다 보니 여야 정치인 연루라는 불씨를 건드려 놓았으나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인상이다. 특히 곤혹스러워 하는 것은 한나라당 이명예총재측에 대한 처리.
지금까지 대선자금을 사법처리한 적이 없는데다 정치적 역공세도 예상되고 그렇다고 이명예총재측의 정치자금을 처리하지 않고 다른 정치인만 수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명예총재측에는 S의원 등 측근들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정당국의 이런 딜레마는 한국통신 간부들의 비리수사에서도 마찬가지. 사정당국은 한국통신 간부들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들을 소환 조사했다. 그 결과 한통 간부 2명이 지난해 대선 당시 사장 기밀비에서 1억원을 빼내 이명예총재측에 전달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간부들의 사표를 받는 선에서 내사종결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측근인 국민회의 권전부총재측도 검찰을 곤혹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 김대통령의 측근인 만큼 문제의 돈이 결국 동교동계의 정치자금으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액의 돈이 오고간 의혹이 국민앞에 드러난 이상 ‘성역없는 수사’로 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여야의 ‘헤비급’ 정치인들이 망라된 만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자금’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어서도 안되며, 대통령의 가신이 연루됐다는 이유로 수사를 중단하면 정권이 타격을 입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국민의 정부’를 자임하는 현정부가 사정의 신뢰를 확보하고 개혁의 탄탄한 교두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청구게이트’를 흐지부지 넘겨버릴 수 없으리라는 지적이 강하다.
〈조원표기자〉cw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