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달포가 지났지만 6·4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좀더 차분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신문은 ‘1당만 의기양양, 3당은 의기소침’이라고 했다. 국민회의는 ‘압승 여세로 정국 주도’라고 자신만만한데 비해 자민련 한나라당 국민신당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민회의는 야당의 과반수 의석을 깨는데 박차를 가하려 하고 자민련은 불쑥 내각제 개헌 발언을 했으며 한나라당은 ‘돌파구는 대여강공(對與强攻)뿐’이라고 하면서 집안 단속을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의 정략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 모르지만 6·4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헤아리고 거기에 깃들인 이 나라 정치 풍토의 병폐를 반성하는 데는 매우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만의 말잔치」일뿐▼
선거가 끝나면 인위적으로 여대야소(與大野小)의 거대 집권당을 만들려는 숫자 게임은 이 나라 정치의 오랜 폐습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법도 눈감아주는 등 갖가지 부정한 거래가 무성했다. 그렇게 해서 정치는 부도덕한 것이 됐고 여당은 오만해졌으며 야당은 한을 품었다. 이런 모습은 한국 정치에 나타나는 ‘영원회귀(永遠回歸)’의 현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그것 자체를 변혁하려는 정치구조 개혁의 노력은 설혹 있었다고 해도 거기에 기식해서 부와 권력을 누리는 그들 자신에 의해서 부정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자민련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내걸고 있는 ‘내각책임제’의 한 모델이라고 할 일본 의회 정치의 경우도 그런 이합집산을 되풀이하다가 이제는 거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이 보인다.
최근 아사히신문은 ‘정치가여!’라고 호소하는 대대적인 연재물을 게재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도 그것을 헤쳐나갈 정치력은 없으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라고 개탄한 것이다.
그것은 정치가 ‘눈앞의 계산’이나 ‘적당히 꿰맞추기’만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일본 국민의 정치 불신은 ‘밑바닥’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정치가의 스캔들이라고 하면 정치가를 바꾸면 되겠지만 정치와 정치가들 자신에 대한 불신이라면 종당에는 “정치가는 필요없다”고 하게 될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또한 스포츠 선수 양성에는 그렇게도 많은 노력과 비용을 쏟으면서 정치가는 아무런 훈련도 검증도 없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거대한 권한을 가진 의회에 나가도 되는 것이냐고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와는 관계 없는 이웃나라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6·4지방선거에서 나타난 52.6%라는 ‘최악의 투표율’은 결코 IMF 체제탓만이 아닐 것이다. 선거는 입후보자들의 ‘그들만의 잔치’라고 할 수 있었다.
국민은 그들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지금 정치구조는 ‘적절한 사람’이 국정에 나갈 제도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이미 한국의 의회정치는 정치인들끼리의 놀음으로 전락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치 따로, 민심 따로’의 민주정치의 위기라고 할까. 정치인이라면 이러한 정치 풍토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하고 양심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것이 한국의 의회정치를 구하는 길이고 정치인들이 힘써야 할 자구 노력이다.
▼대결아닌 대화의 시대▼
정말 여당이든 야당이든 6·4 지방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직시할 수 있는 슬기를 되찾아 주기 바란다. 가령 광역단체장 선거의 정당별 득표수를 보면 한나라당 6백70여만표, 국민회의 5백70여만표, 자민련 2백50여만표로 나타나 있다. 투표자들은 여야 어디에도 몰표를 던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는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근소한 차로 이길 수 있을 뿐이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여당이라고 오만해질 수 없고 야당이라고 비굴해질 것 없다. 승리나 패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결의 정치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화의 정치에서는 목소리가 낮아야 한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야당이 야당다워야 여당이 여당다워지고, 여당이 여당다워야 야당이 야당다워진다는 민주정치의 원칙을 재확인해주기 바란다.
지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