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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이헌진/「얼굴 숨긴」이웃사랑

입력 | 1998-07-14 19:28:00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서울 강동구의 이름 모를 의사들이 매월 불우이웃돕기에 나서 훈훈한 이웃사랑의 정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익명의 강동구 의사들은 2월부터 매월 60만원씩을 천호2동 사무소에 보내고 있다.

동사무소측은 매달 마지막날 이 성금을 쪼개 관내 불우가정 세 곳에 각각 20만원씩 전달한다.

그러나 동사무소 관계자는 ‘누가’‘왜’ 성금을 기부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는다. 후원자들이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사무소측은 다만 이들이 의사라는 것과 2월 동네소식지에 실린 어려운 이웃의 사연을 본뒤 불우이웃돕기에 나선 사실만을 귀띔했다.

이 ‘숨은 후원자들’의 ‘작은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도 있다.

서울 강동구 천호2동에서 막노동을 하던 이모씨(50)는 지난해말부터 일자리가 없어 고등학생인 자녀들의 학비는 물론 자신의 신장결핵 치료비조차도 댈 수 없었다.

이씨는 5월말 한달새 체중이 10㎏나 빠지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위독한 상황에 처했지만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때마침 동사무소는 후원자들의 불우이웃돕기 성금 20만원을 이씨에게 전달했고 그는 가까스로 위험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씨처럼 이들에게 도움을 받은 가정은 모두 13군데. 대부분 가장(家長)의 실직으로 생계마저 곤란한 가정이었다.

동사무소 관계자는 “후원자들은 예전부터 개인적으로도 불우이웃돕기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런 ‘작은 사랑’이 모여 결국 밝은 세상이 되는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익명의 후원자’들은 최근 어렵사리 수소문해 찾아간 기자에게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못된다”면서 신원이 공개되는 것을 한사코 사양했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