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전보장회의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사업’을 전면 백지화한 것은 새 정부의 통일정책과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의 극복이라는 경제정책을 동시에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사업’은 우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려는 김대중(金大中)정부의 정책과 맞지 않는다.
자칫하다가는 남북관계에 치명상을 줄 수도 있다.
게다가 IMF관리체제의 극복을 위해선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인데 미국과 일본이 반대하는 재처리사업을 강행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반영됐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과 일부 원자력발전 관계자들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가 핵주권(核主權)과 관련된 문제인데다 사용후 핵연료의 경제적 가치가 적지 않은 만큼 어떤 식으로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용후 핵연료의 저장용량이 2006년이면 포화상태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에 그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들.
▼백지화 배경〓새 정부는 정치권 일부와 한국전력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사업’을 극비리에 추진해온 사실을 지난달 중순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한전이 공식 업무보고와 인수인계 때 이 내용을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5월에 취임한 장영식(張榮植)한전사장은 6월 중순에야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이를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상정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6월말 회의를 열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사업’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시켜온 미국의 세계정책과 갈등을 부르고 북한의 정치공세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해 백지화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이 사업은 국제 핵확산금지조약과 김대중대통령의 통일이념에 결정적인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결론지었다.
플루토늄이 반입돼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다는 오해를 살 경우 남북관계 회복은 어렵게 될 것으로 판단한 것.
게다가 중국 일본 대만 등 주변국가들이 한국의 핵무기 개발에 호의적일 까닭이 없으며 일본과 대만의 핵무장을 자극할 우려도 높다고 보았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의 핵재처리사업을 엄격히 금지해왔으며 6월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한국을 잠재적 핵보유국으로 규정할 정도로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아무리 평화적인 목적에 사용할 것이라고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설득하더라도 미국이 사전 동의를 해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분석이었다.
또 인도 및 파키스탄의 핵실험으로 핵문제에 관한 세계 여론이 좋지 않은데다 그린피스 등 국제환경단체의 표적이 되면서 국가이미지만 추락시킬 가능성도 높다는 것.
원전연료 재활용방안을 검토한 결과 경제성이 없고 막대한 외자가 소요되어 추진이 곤란하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미국과 일본 및 IMF의 경제 지원으로 구조조정을 추진중인 마당에 공연히 핵문제로 이들의 경제지원을 어렵게 해서는 안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추진 배경〓지난 정권때 사용후 핵연료를 해외에서 재처리해 국내에 다시 반입하려 했던 것은 91년 노태우(盧泰愚)당시 대통령의 비핵화선언이 결정적 배경이 됐다.
노전대통령은 이 선언을 통해 “한반도 안에 핵연료 재처리 및 핵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하지만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은 점차 포화상태로 치달아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문제가 원자력업계의 최대과제로 부상했다.
실제로 고리 영광 울진 월성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용량은 6천5백89t인데 97년말 현재 3천2백33t이 임시 저장돼 있으며 이는 2006년이면 완전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할 수 있는 영구처분시설을 짓는데는 수천억원이 들고 무엇보다 부지 선정이 현상태로는 거의 불가능하는 것이 원자력업계의 지적이다.
원자력문화재단의 김종흡(金鍾洽)부장은 “원전에서 사용했던 장갑 등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리할 부지 선정도 지역주민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방사능 강도가 훨씬 높은 사용후 핵연료의 저장부지에 대한 지역주민의 반발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후 핵연료의 경제적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이를 추진해온 측의 주장이다.
재처리사업 추진의 막후 주역인 박관용(朴寬用)한나라당의원은 “마포포럼 부설연구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00년이면 사용후 핵연료의 경제적 가치는 1백억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원자력업계는 비핵화선언을 “원자력의 평화적이고 경제적 이용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 선언”이라고 평가해 왔다.
결국 국내에서 재처리를 할 수 없고 부지 선정도 어려운 상황에서 해외에서 재처리를 추진해 국내에 반입하는 방법을 시도할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추진 과정〓핵재처리문제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핵연료에 포함돼 있는 플루토늄. 이는 핵무기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의혹 때문에 국제적인 이동이 있을 때마다 민감한 사안이 돼왔다.
미국은 자국으로부터 우라늄정광 등 핵연료를 수입한 국가와 미국산 원자력설비를 사용하는 나라에 대해 사용후 핵연료를 이동할 때 반드시 미국의 사전동의를 얻도록 원자력협력 쌍무협정에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으로서는 공개적으로 추진할 경우 국제사회, 특히 북한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사전동의를 얻기 위해 한전이 미국 법률회사 H&H사와 비밀리에 계약을 하고 비공개로 미국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한 로비를 부탁했던 것.
특히 이 프로젝트는 비핵화선언이라는 약점이 있는 한국정부로서는 절대 공개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사안으로 분류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임규진·박현진기자〉mhjh22@donga.com
◇한국 원자력 정책 약사
▼51년〓미국, 세계 최초로 원자력발전 성공
▼54년〓국제원자력기구(IAEA) 창설
▼78년〓국내 최초로 고리 원자력 1호기 상업운전 개시
▼79년〓박정희대통령, 재처리시설 도입 추진 좌절
▼89년〓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통과
▼90년〓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유치와 관련, 안면도사태 발생
▼91년〓노태우대통령, 핵재처리 및 농축시설 비보유(非保有)선언
▼93년〓2006년까지 원전 14기 추가건설 결정
▼95년〓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북한과 2기의 경수로 건설에 관한 협정 체결
▼97년〓북한 경수로건설 기공식
▼97년〓일부 정치권과 한전, 핵연료 해외재처리를 비밀리에 추진
▼98년〓정부, 핵연료 재처리사업 전면 백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