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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DIM 열풍…내손으로 『척척』 「스스로族」급증

입력 | 1998-07-19 19:05:00


주부 박성희씨(42·서울 둔촌동)는 지난주 일요일 실내 수영장에 갔다가 너무 예쁜 수영복을 보고 부러웠다. 같은 레인에 있던 20대 중반 아가씨 두명의 흰색 원피스 수영복에 스누피 고양이 꽃 등 귀엽고 산뜻한 다채로운 무늬들이 수놓아져 있었던 것. 물어보니 반(半)완성품을 파는 백화점의 ‘DIY코너’에서 다양한 무늬들을 구입해 직접 붙였단다. 라커룸에서 보니 팬티 티셔츠에도 예쁜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고 바지도 직접 잘라 만든 큐롯 반바지.

미혼의 카피라이터인 김모씨(29·여). 그녀의 PC는 반제품 상태를 사서 직접 조립한 것. 혼자 사는 7평짜리 아파트의 가구와 오디오장도 선반과 기둥을 따로 구입해 만들었다. 요구르트도 제조기를 사다놓고 우유를 전기열로 발효시켜 만들어 먹는다.

하지만 이들을 ‘보기드문 알뜰 살림꾼’ ‘맏며느리감’으로 생각하면 착각. 김씨는 취직 후 독립하면서 식기세척기를 제일 먼저 장만했을 정도로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로 시간 보내는 걸 아까워하는 성격. “부모님과 함께 살 땐 어머니가 자질구레한 일을 시키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는데 요즘은 스스로 하는 게 너무 즐거워졌다”는 게 김씨의 설명.

웬만한 건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대로 해내기를 즐기는 ‘스스로 세대’가 늘고 있다. 주축은 우리사회의 ‘중산층 2세대’를 형성해가고 있는 20대후반∼30대 초반의 젊은이들.

인스턴트 통조림문화가 판치는 세태속에서 다소 의외라고 할 수 있는 ‘스스로 세대’ 등장의 징후는 수년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DIY’제품에서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다. DIY(Do It Yourself)는 소비자가 반제품 상태의 부품을 구입,직접 완성품을 만드는 소비행위.

17일 서울 교보문고의 DIY코너. 방석보 재료를 고르느라 여념없던 최영윤씨(31)는 “개성에 맞는 무늬를 만들고 싶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현재 DIY제품은 가구 PC 인테리어 의상 아파트(내부배치) 두부 요구르트 맥주 빵 참기름 등 의식주 전반에 파고든 상태. 자동차자가정비 셀프주유소 셀프드라이크리닝 등 ‘셀프비지니스‘도 급속히 번지고 있다. 아파트촌 젊은 주부 사이에선 대학전공이 다른 이웃 주부와 돌아가면서 자녀를 가르치는 ‘셀프 과외’가 이미 뿌리내렸다.

이같은 ‘스스로 열풍’을 사회학자들은 ‘자기신뢰(Self―Reliance)’감정과 연결해 해석한다.즉 사회가 발전할수록 ‘나같이 못배운 놈이 뭘 하겠어…’라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사람은 적어지고 고등교육을 받은 자신의 역량을 신뢰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진다. 자기신뢰가 ‘두 잇 마이셀프(Do It Myself·DIM)’로 이어진다는 것.

각박해진 사회상의 반영이라는 해석도 들린다. 서울의대 정신과 류인균교수는 “대가족제도와 직장의 끈끈한 인간관계가 사라짐에 따라 가족이나 조직에서 정체감을 찾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으려한다”고 분석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터니 기든스도 존재의 안정감을 상실하고 자아해체의 위기에 놓여있는 후기산업사회 인간이 스스로 뭔가를 하는 DIY제품 조립을 통해 ‘개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위안을 갖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60년대 이후 형성돼 온 중산층가정의 고학력부모에게서 ‘내 아들(딸)이 세상에서 최고다’는 칭찬을 들으며 개성을 존중받고 자라난 젊은이들. 이제 어른이 된 그들이 ‘두 잇 마이셀프 세대’를 형성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사회학자들은 “영국경제를 되살린 대처리즘의 힘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한다’는 건전한 영국 중산층의 정신에서 나왔다”며 “우리사회에서도 ‘스스로 문화’가 앞으로 ‘2세대 중산층’의 생활문화 중 중요한 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기홍기자〉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