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가까이 끌어온 15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국회의장 자유투표제 수용발언으로 물꼬가 트였다.
그러나 원구성 협상을 둘러싸고 국민회의 등 여권이 보여준 오락가락한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여권은 그동안 “책임정치 구현을 위해 여당에서 국회의장이 나와야 한다”며 “이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88년 여소야대 정국 때 야당이 여당에 국회의장을 양보한 점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총무도 기회있을 때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국회의장 자유투표는 이상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인 발상이며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며 자유투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같은 여권의 완강한 입장으로 원구성 협상이 전혀 진전을 보지 못했고 17일의 제헌절 50주년 기념식도 국회의장이 없는 상태에서 편법으로 치러졌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자유투표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던 여권이 김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별다른 해명도 없이 이를 수용했다.
여권으로서는 국민여론 등을 감안해 더 이상 식물국회를 방치할 수 없어 입장변화가 불가피했다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주장해온 원칙에 변화가 생겼다면 이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는 것이 집권당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여권내에서조차 “필요에 따라 원칙을 바꾸는 인상을 줄까 우려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여권이 괜한 고집으로 원구성만 늦춘 게 아니냐는 비난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양기대 k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