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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칼럼]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입력 | 1998-07-19 20:26:00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장작을 팼다. 지금 당장에 지필 땔감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겨울철에 쓰일 장작을 미리 마련한 것이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다.

내가 이 산골짜기에 들어와 살면서 이 근처에서 유일하게 사귄 친구가 한 사람 있는데, 그 인연은 나무로 인해 맺어졌다. 잡초가 무성한 묵은밭에 나무를 심기 위해 묘목을 운반하던 중에 그를 만났다.

요즘 사람 같지 않게 진실하고 성실한 그의 인품에 초면인데도 신뢰감이 갔다.

▼ 서로 믿지 못하는 병폐 ▼

무릇 인간관계란 신의와 예절이 바탕이 되어야 지속된다. 그가 하는 일을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내 오두막에 일손이 필요하면 20리 밖에 사는 그를 찾아가 부탁하면 와서 거들어 준다.

그는 농사는 네 식구가 먹을 만큼만 짓고 주로 집짓는 일을 한다.

보일러도 놓고 미장일도 하고 다소 거칠지만 목수일도 잘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나와 함께 구들을 놓기도 했다.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만능인 셈이다.

이런 그가 하루는 나한테 와서 하는 말이, 이 산골에서도 IMF사태를 실감하게 됐다고 했다. 경제위기를 도시의 일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그 영향이 이런 시골에까지 미치게 됐다는 것이다. 이일 저일 항상 일거리가 있어 쉴 여가가 없었는데, 최근에 들어 그 일거리가 뚝 끊어지고 말았다면서 앞으로 살아갈 걱정을 했다.

7년 가까이 사귀었으면서도 그날 처음 그의 나이가 마흔 하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날부터 장작 패는 일을 했다. 지난 해 가을 그가 실어다 놓은 통나무를 쌓아두고, 겨울철에 운동삼아 그때마다 패서 쓰려고 했는데 그의 말을 듣고 내친김에 일을 시작한 것이다. 나흘을 일한 끝에 한겨울 땔감 걱정을 덜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병폐는 서로 못미더워 하는 일이다. 국민과 정부의 관계도 그렇고 노사관계도 그렇다. 학생과 교사,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 사이도 서로 믿고 의지하려는 기풍이 사라져가고 있다.

한 나라의 복지와 경쟁력은 그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역사의 종언과 마지막 인간’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문화적 공동체가 허약하다.

문화적 공동체는 외부적인 압력이나 규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내면화된 윤리적 습관과 도덕적 의무감을 기초로 형성된다.

그런데 이 내면화된, 다른 말로 하자면 몸에 밴 윤리적 습관과 도덕적 의무감이 우리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냉혹한 국제경쟁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학자들이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이 공통의 목적을 위해 단체와 조직 내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에서 축적된다. 사회적 자본은 그 사회와 집단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뢰가 정착되었을 때 생긴다.

사회적 자본이 낮은 국가는 기업의 규모가 작고 허약하며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전염병처럼 널리 퍼져 있는 공직자의 비리와 부패, 비효율적인 대민행정으로 인해 국민이 고통을 겪게 된다.

외국자본이 들어왔다가도 번거롭고 까다로운 행정절차 때문에 등을 돌린다는 사례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바다.

신뢰란 서로 믿고 의지함인데, 그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 자신 앞에 진실한 데서 온다.

또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만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

눈앞에 놓인 몇푼의 이해 때문에 신뢰를 저버린다면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우선 자기에 진실해야▼

우리 사회가 다시 일어서려면 저마다 자기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자기 자신 앞에 진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힘을 한데 모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개인이나 조직의 이해관계를 넘어 전체를 생각할 때다.

개체의 희생이 전체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면, 그 개체는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전체 속에서 또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이 험난한 시대가 우리 삶을 저울질하고 있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뢰를 통해 우리들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법정(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