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의 솔로앨범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9일자 C4면에 실린 가요평론가 임진모씨의 음반평, 그리고 가요계의 일부 부정적 시각에 대해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아무도 없는가’의 공동저자 김진성씨가 새음반의 음악성은 매우 높다며 반론을 제기해왔다》
‘서태지 제1집’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음반 자체가 아니라 일반인과 평론가들의 반응이다. 어쩌면 그렇게들 아무것도 모르는 얘기로만 점철하는 지 모르겠다.
비난하려고 작정한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음악평론가들조차 ‘음악 외적인’ 평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책임 방기’다.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그럴싸한 어떤 말도 하지 못하면서 그냥 “좋다” “나쁘다”는 말로 끝내버리면 병속에 갇혀 있다 날아가는 비둘기도 안 믿는다.
서태지는 이번 솔로 앨범에서 기존의 수많은 음악들을 가져다 철저히 해부한 후 ‘서태지식’으로 재조립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것은 테크노 음악작업 방식중의 하나인데 그는 수많은 곡들을 재조립하면서 각각의 곡에만 신경 쓴 것이 아니라, 앨범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로보트로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곡만 따로 듣는다면 재미가 매우 적겠지만 앨범 전체를 걸어놓고 듣는다면 의외로 쫄깃하다. 심지어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인더스트리얼과 테크노 하드코어 등의 장르를 록스타일로 ‘샘플링’하는 기발함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 음반은 9곡이 담긴 28분 짜리다. 절대로 ‘6곡’이 아니다. 간혹 30초 안팎의 연주곡 3개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음반은 ‘감성으로 만든 음악’이라기 보다는 ‘이성으로 조립한 로보트’에 가깝기 때문이다. 로보트에서 부품 하나가 빠져버리면 제대로 동작을 하겠는가. 어쩌면 이 음반은 ‘좀 많이 긴 한곡짜리’작품으로 봐야할지 모른다.
게다가 그는 28분 가량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편집증 환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섭게 많은 음악을 집어넣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것들은 모두 뛰어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Take’시리즈 중 하나를 골라 귀를 쫑긋 세우고 부분 부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들어보라. 곡이 계속 변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5초이상 똑같은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그는 예전부터 음악 작업을 할때 엄청나게 ‘쑤셔넣는’ 스타일을 선호했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해졌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의 완성도를 지닌 신보가 발매되면 ‘음악인 누구, 새로운 장르 시도’라고 하는게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본다. 서태지의 이번 음반은 그 자체로 압권이고 필자 개인으로서는 올해의 5대 명반이나 10대 명반에 꼽을 만큼 훌륭하다.
중독성도 제법 강해서 여기에 한번 제대로 빠지면 다른 음악이 귀에 안 들어올 정도다. 솔직히 국내든 외국이든 이 정도 음반은 나오기 힘들다.
김진성(「서태지와…」공동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