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플로리다에 사는 미국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야구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불쑥 “한국의 공동묘지가 도대체 어떤 곳이냐”고 물어왔다.
“박세리가 캄캄한 공동묘지에서 담력을 키웠다는데 아들의 간덩이가 약한 것 같으니 한국으로 한번 보내면 어떨까”하는 것이었다.
이에 필자는 “어디 박세리뿐인가. 박찬호도 어릴 때 한밤의 공동묘지를 달렸어. 그런데 그 코스를 가려면 워낙 예약이 밀려있어 그냥은 힘들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몇번이나 “정말이냐”고 정색을 하며 물어 배꼽을 잡았다.
그러나 필자는 웃는 중에도 이러다간 충청도의 공동묘지가 꿈나무 선수들의 ‘담력 단련장’으로 변하는게 아닐까 하는 서글픈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박찬호는 학창시절 담력을 키우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반면 박세리는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시킨 것이 다르긴 해도 공동묘지야 말로 국내의 열악한 스포츠 환경을 대변하고 있는 곳이다.
혜택보다는 규제에, 서비스보다는 세금수입 올리기에 급급한 ‘개혁의 사각지대’인 스포츠에 대한 인식전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제2의 박찬호, 제2의 박세리는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도 이제 공동묘지보다는 정상적인 학원 스포츠, 체계적인 클럽활동을 통한 세계적인 스타탄생의 토양을 만들어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허구연〈야구해설가〉kseven@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