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반년도 되지 못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말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할는지 모른다. 더욱이 오늘과 같이 국내외 상황이 무원칙하게 동요하는 험난한 역사속에서 그의 통치 철학이 현실을 견뎌 내고 한줄기 빛을 던져줄 것이냐 하는데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한다.
현실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뒤엉켰을 때 일어나는 사태 하나하나에 대해 일비일희(一悲一喜)의 반응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실을 뚫고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일관된 통치 철학 없이는 나라 안팎의 신뢰를 얻을 수 없고 따라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나 신뢰란 현실에서의 실효성을 거듭 확인하는 데서만 일어난다.
미사여구(美辭麗句)의 관념 개념 말이 아니라 그것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어서 실천되고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 실용적 통치철학 필요 ▼
역사를 바라보면 분명한 개혁 의지를 표명했다가 현실에서 좌절을 맛보게 되자 후퇴하고 도리어 무원칙한 반동으로 전락한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 달에는 건국 50주년을 맞이한다.
지금에 이르는 대한민국 반세기의 역사는 대외관계에서 본다면 대미(對美)관계와 대일(對日)관계를 축으로 해서 선회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의 인상에는 대미관계는 6월 김대통령의 방미에서 보는 것처럼 비교적 고무적이었는데 비해서 대일관계는 대통령 자신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몇 번이고 밝힌 대로 아직도 양국민의 화해에 도달하기에는 먼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은 분명히 한일 양국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를 위해서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해야 한다.
▼ 동북아는 공동운명체 ▼
김대통령이 대일관계에 대해 거듭 언급한 내용을 보면 1965년의 한일협정에서 비롯한 한일간의 정치적 경제적 관계만으로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기에 미흡하다고 보는 것 같다.
이른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한 것이라든지,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로 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든지, 또는 그것에 앞서 한일 어업협정을 일본이 일방적으로 폐기한다고 통고해 왔을 때 자제력을 발휘한 것이라든지 하는 것은 새로운 한일관계를 희망하는 김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보아도 되는 것 아닐까.
사실 이러한 그의 자세에는 근대 이후 대국(大國) 사이에 끼여 고난을 겪어온 한민족의 비원(悲願)이 서려 있다고 하겠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주변 대국이 대립했을 때는 그 전쟁터가 되거나 분할되거나 했다.
지금도 우리는 그 후유증으로 남북분단의 쓰라린 경험을 계속하고 있다.
주변 대국 사이에 평화가 있어야 한반도에 평화가 있었고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있을 때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과 문화가 꽃피었다.
19세기 후반 서구의 세력이 밀려올 때 동북아시아는 분열했고 일본은 재빠르게 아시아를 침략하는 세력으로 변신했다. 오늘 아시아의 이러한 무력(無力)상태가 다시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북아시아의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일본은 어떠한 길을 택하려는가라고 묻게 된다.
중국이 위안(元)화 절하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것은 이러한 아시아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음에 틀림 없다.
한국은 이러한 시대에 대일관계와 대중(對中)관계를 어떻게 전개해야 할 것인가.
김대통령이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남북교류정책을 견지하려고 하는데도 21세기의 동북아시아에 대한 비전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대통령이 10월에는 방일의 길에 오른다고 한다.
▼ 新한일관계 출발을 ▼
일본에서도 국민의 개혁에 대한 바람을 안고 오부치(小淵)내각이 출범했다.
새로운 한일관계에 대해서 한국은 이미 일본을 향해 공을 던졌다고 하겠다.
일본의 새로운 내각이 어떻게 이 공을 받는가 하는 것은 아마도 한일 두나라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향하는 동북아시아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명관(한림대교수·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