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 변산반도의 내소사 대웅보전. 그곳에 가면 온통 꽃밭이다. 연꽃 국화 모란이 사시사철 세인(世人)을 반긴다. 변산반도의 시원한 풍광과 함께.
그 꽃은 그러나 땅에 피어난 게 아니다. 창호(窓戶·문)에 활짝 핀 꽃, 바로 문창살(문살)에 조각해 놓은 꽃이다. 그래서 시들 줄을 모른다.
이같이 꽃으로 장식한 문창살을 ‘꽃무늬 문살(꽃살)’이라 한다. 꽃살이 있는 문은 ‘꽃살문’이 되고.
내소사 대웅보전은 우리나라 꽃살문 중 가장 빼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건물 정면 여덟짝의 창호엔 꽃무늬 문살이 가득하다. 문짝 하나 하나가 그대로 꽃밭이고 꽃가마다.
사방연속무늬로 끝없이 이어진 꽃들은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다. 단청(丹靑)의 화려함은 세월에 씻겨 내려갔고 이제는 속살을 드러내 나무빛깔 나뭇결 그대로다. 담백하고 청아하며 깔끔하고 순박한 한국의 멋, 한국의 아름다움이다.
깊은 밤, 꽃살에 붙은 창호지 틈새로 은은한 달빛이라도 새어 들면 세속의 욕망은 소리 없이 흩어지고 금방이라도 해탈의 문이 열릴 듯하다. 꽃살문 하나에도 이처럼 깊은 무념무상의 경지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이름 없는 목공의 섬세한 손끝 하나에도 이처럼 지극한 불심과 예술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문도 아니고 창도 아닌 우리네 창호가 빼어난 자태를 지닐 수 있게 된 것도 다름아닌 이 문창살 덕분이다.
문창살의 모양이 아(亞)자를 닮으면 아자문(아자창), 만(卍)자를 닮으면 완자문(완자창 만자문 만자창), 정(井)자를 닮으면 정자문(정자창)이라 한다. 또 살을 45도 135도로 교차시키면 빗살문(빗살창), 여기에 수직으로 살 하나를 더 넣으면 소슬빗살문(소슬빗살창)이라 부른다. 이밖에도 여러 모양이 있다.
꽃무늬는 주로 빗살과 소슬빗살에 장식하는데 이를 각각 빗꽃살, 소슬빗꽃살이라 한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도 빗꽃살 소슬빗꽃살의 하나.
꽃무늬는 특히 사찰 건물의 문살을 장식한다. 궁궐 건물 문살엔 꽃이 없다. 왜 그런가. 꽃은 불가의 상징물로, 진리를 뜻하기 때문. 꽃살문은 그래서 극락정토로 가는 통로인 셈이다.
전통 목조건축물에서 건축가의 멋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소의 하나인 문창살. 문화재위원인 김동현씨(한국건축사)는 이렇게 말한다. “꽃살문은 현세에서 이상을 구현하려 했던 우리 조상들의 정신세계가 깊고 그윽한 미적 감각과 어우러지면서 탄생한 예술작품”이라고.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