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이 비대한 사업을 떼어내는 ‘슬림화’에 열을 올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다국적기업들은 거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국내기업과 사업부문을 무차별 인수, ‘공룡화’하고 있다.
그동안 일부 사업에만 진출, 국내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세계적인 규모의 다국적 기업들이 국내기업들의 계열사 매각붐을 타고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연결되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해가며 거대기업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것.
최근 한국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펼치고 있는 독일 바스프가 대표적. 세계 1백50위권에 들 정도의 규모인 바스프는 작년말부터 한화바스프우레탄, 효성바스프, 대상 라이신 사업부를 차례로 인수해 한국 투자분이 1조원을 넘는 초대형 기업으로 변모했다. 바스프는 내년 1월 3개사를 통합, 명실상부한 ‘대기업’의 모습을 갖출 예정이다.
의약품사업 농업부문 영양식품 등 3대 사업부문을 거느리며 생명과학 분야에서 세계 1위인 스위스의 노바티스도 마찬가지. 지난해 한국내 의약부문에서만 4백억원의 매출을 올린 노바티스는 작년말 서울종묘를 인수, 종묘시장에 뛰어든데 이어 지난달에는 동양화학공업의 농약사업부문을 인수했다.
세계 7대 제약화학그룹인 프랑스의 롱프랑도 그동안 제약에만 치중해오다 지난달 농약회사인 전진산업을 인수, 화학쪽으로도 발을 넓혔다.
최근 쌍용제지를 인수, 화장지 시장에 진출한 한국P&G도 다각적인 사업분야를 모색하고 있다. 89년 ‘아이보리비누’와 ‘팸퍼스기저귀’를 들고 한국에 상륙한지 불과 10년만에 주방용품 화장품 의약품 식음료품 등으로 생산품목을 확대하고 있다. P&G측은 “앞으로도 인수 합병 등을 통해 전 생활용품 분야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기염.
기아자동차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세계적 자동차회사 포드와 GM은 최근 각각 6,7개씩의 크고 작은 부품회사를 합병 또는 합작운영하며 완성차에서 부품에 이르는 일관생산체제를 갖춰놓았다. 이같은 외국기업들의 몸집 불리기는 한국을 포함, 북한 중국 일본 동남아 등 아시아 소비시장의 비중이 커지는 것을 노려 전략적 거점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한국시장에 진출한 뒤 30년 동안 보틀링 사업을 국내기업 몇군데에 나눠 맡겼던 코카콜라가 보틀링 사업을 모두 인수하면서 제품생산과 유통 판촉 등을 직접 관리하는 체제로 변모한 것도 바로 이런 배경. 한국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보고 전략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뜻.
바스프의 위르겐 함브레히트 아시아지역 본부장이 한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가 무르익으면 북한에 직접 투자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 데서도 다국적기업들의 이같은 시장전략을 엿볼 수 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