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산업의 공급과잉 사태를 촉발한 계기는 94년 삼성그룹의 자동차사업 진출이다. ‘곧 시장이 포화될 것’이란 선발업체 및 국내외 전문가들의 반발을 무릅쓰면서 시장진입을 허용한 산업자원부(당시 상공부)와 김영삼(金泳三)정부의 논리는 ‘언제까지 정부가 특정기업의 시장진출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력을 가진 산자부가 5일 자동차산업을 합리화대상에 올려놓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겉으로는 ‘민간자율’과 ‘정부지원’을 강조하지만 재계는 ‘코란(이슬람 경전)이 아니면 칼을 받으라’는 이슬람식 포교자를 바라보는 분위기다.
산자부가 5일 방침을 밝힌 나머지 합리화대상도 재벌의 무분별한 중복투자를 유도한 정부의 ‘손때’가 묻어있다. 90년대 초반 일부 선발업체의 부도위험에도 불구하고 현대 삼성의 석유화학 투자를 허용한 것도, 6공시절 신도시 2백만가구 건설을 통해 시멘트파동을 자초한 것도 정부였다.
공교롭게도 산자부가 제시한 합리화업종은 두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수출 효자산업으로 지목됐던 것들.
‘적기(適期)에 과감하게 투자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무역의 날 포상을 받은 관련 업체도 상당수다.
물론 새정권 들어 결자해지(結者解之)차원에서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구조조정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수십년동안 ‘관치’체질에 길들여진 정부가 ‘산업지도’를 직접 재단할 경우 산업구조개선은 물론 ‘시장주의’란 신정부의 국정운용 원칙도 함께 수렁에 빠질 위험이 매우 높다.
섣부른 판단보다 재벌사간 부당내부거래 차단, 재무구조 개선 등 예측가능한 준칙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재벌정책을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필요하다면 정부와 재계, 학계의 민주적인 난상토론도 생각해 볼만하다.
박래정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