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으로 변한 주차장
수마(水魔)가 지나간 ‘수도(水都)서울’은 처참했다.
5일부터 6일 오전까지 쏟아진 폭우로 서울시내 도로 곳곳이 시뻘건 황톳물에 뒤덮인 가운데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축대가 무너지면서 모두 13명이 숨지고 10여명이 크게 다쳤다.
6일 오후 서울 상공. 하늘에서 바라본 중랑천과 한강은 시뻘겋게 휘감겨 떠내려오는 ‘흙물’로 뒤덮여 있었다. 한강 둔치의 시민공원 모두는 물에 완전히 잠긴 채 가로수 끝머리만이 머리를 물밖으로 내밀고 있었다.
수해(水害)의 절정은 범람의 위기를 간신히 넘긴 중랑천 일대. 이날 오전 4시경 노원구 하계2동 동부간선도로 하계동 출구 도로에서 김원태(47·목사·광진구 구의동) 황정란씨(46) 부부가 폭우로 불어난 물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승용차안에서 숨졌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새벽 기도를 나섰다가 갑자기 쏟아진 비로 동부간선도로가 물에 잠기면서 오도가도 못한 채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랑천을 따라 뻗어 있는 동부간선도로는 흙탕물에 뒤덮인 채 오전 7시반경에는 간선도로 주변 물막이벽 1m까지 물이 차올랐다. 중랑천 일대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 하계동 등 주택가는 불어난 물을 감당하지 못한 하수구가 역류, 순식간에 황톳물에 잠겼다.
새벽부터 물이 불어나는 것을 지켜봤다는 조성준씨(38)는 “오전 6시부터 단 30분만에 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며 “지리산 계곡의 참사가 떠올라 공포에 떨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중랑천 일대 주택가는 군데군데 솟아난 지붕들만이 이곳이 주택가였음을 나타냈으며 상가 건물조차도 허리가 잘린 듯 1층은 물에 잠긴 채 기형적인 모습으로 솟아올라 있었다.
월릉교 아래에는 청소 트럭이 떠내려와 반쯤 하천에 잠겨 있었고 하수분류관 공사를 하던 포크레인 한 대가 머리만 내민 채 물살을 버티고 있었다.
월계역 앞 간선도로 하행선 부분은 완전히 파손된 상태로 지진이 난 듯 2m가까이 주저앉았고 군데군데 10㎝가량의 금이 가 있었다. 직경 2m이상의 구멍이 뚫린 곳도 있었다.
상계1동 주민 4백여가구 7백여명은 폭우가 쏟아진 새벽 인근 수락초등학교로 대피했으며 이날 폭우로 서울시내 11개구 18개동에서 1천24가구의 주민이 집을 뛰쳐나와 인근 초등학교와 임시 대피소 등으로 몸을 피했다.
지하철 7호선 태릉역 내부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지하 2,3,4층은 이미 수몰됐으며 지하 1층에서 직원 1백여명이 컴퓨터 등 각종 사무집기를 꺼내고 황급히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있었다.
오전 10시. 빗줄기가 가늘어 지면서 도로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자 빗물에 휩쓸려 쓰러진 가로등과 떠내려온 농작물 스티로폼 등 쓰레기 더미들이 도로변에 어지럽게 쌓였다.
10시반경 동부간선도로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자 월릉교 위에서 구경하던 일부 시민들이 빗물에 떼밀려온 물고기를 잡기 위해 하천변으로 몰렸다. 일부는 태연히 낚싯대까지 들고나와 복구 작업을 하고 있던 공사 관계자들로부터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오전 6시반경 강북구 우이동 우이동계곡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음식점을 덮쳐 일가족 3명이 숨지고 7명이 크게 다쳤다.
경찰과 119구조대는 즉시 포크레인을 동원,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흙더미에 깔린 11명중 8명을 구하는데 그쳤다.
우이동 계곡 유원지 일대 30여곳의 식당들도 이 산사태로 대부분 크게 부서졌으며 도로변에 세워진 수십대의 차량들도 흙더미에 묻혔다.
이밖에 은평구 진관내동 381 연화사 축대가 무너져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으며 용산구 후암동과 은평구 진관외동에서도 각각 축대 붕괴 등으로 2명과 3명이 숨졌다.
한편 이날 서울 일대 출퇴근길 차량들은 곳곳에 도로가 유실되고 교통이 통제되면서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오전 6시반에는 마포구 상암동 지하차도가 천장까지 물에 잠겼으며 은평구 진관내동 북한산성 입구 세월교가 북한산에서 흘러내려온 계곡물로 교통이 전면 통제됐다.
또 성동사거리에서 군자사거리로 향하는 속칭 ‘뚝방길’이 오전 6시부터 교통운행이 전면 통제됐으며 마장 3거리와 도선동 사거리를 잇는 마장 지하차도도 5일밤부터 교통 통제에 들어갔다.
상습 침수지역인 강동구 암사2동 선사마을 70여가구를 비롯해 고덕동 명일동 길동 등 강동구 5백여가구는 가옥과 지하실이 완전히 침수돼 주민들이 하루종일 물을 퍼내는 작업에 매달렸다.
또 일산 신도시 주민들이 출퇴근길로 이용하는 자유로와 강변북로 일부가 물에 잠겨 이날 오전 극심한 교통 체증을 빚었다.
〈이 훈·윤상호·이완배기자〉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