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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北部 물난리/강화도 피해현장]섬전체가 뻘밭으로

입력 | 1998-08-06 20:07:00


밤새 6백㎜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인천 강화도는 말 그대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섬이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 집안으로 쏟아지는 엄청난 빗물과 토사. 천둥 번개가 몰아치며 전기 전화마저 끊어져 주민들은 구조 한번 청하지 못했다.

6일 오전 10시경 언제 비가 내렸느냐는 듯 다시 햇살이 비치고 매미가 울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하늘의 조화’에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강화도는 장대비가 퍼부은 6일 오전 4시경이 마침 만조시간대여서 피해가 더 컸다. 빗물이 빠지지 못하고 거꾸로 밀려든 것. 평소 웬만한 비는 금세 바다로 흘러나갔으나 이날은 밀려드는 바닷물 때문에 빗물이 역류했고 결국 섬 전체가 ‘비명의 저수지’로 변했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강화읍 신문리 국화리 일대는 흙더미가 무너져 내려 아예 주택가가 사라져 버렸다. 쓰러진 전신주 끝머리가 흙더미 위로 삐죽이 나와있지 않았다면 사람이 살았던 곳인지 조차 모를 정도였다.

“‘사람살려’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들렸어요. 그 소리를 듣고 달려나갔을 땐 윤씨의 집은 이미 없어져 버렸고 산에 있던 나무들이 쓸려와 2백m아래 빌라 벽체를 쾅쾅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국화리 들국화빌라에 사는 한기욱(韓基旭·58) 상철(30)씨 부자는 6일 새벽의 악몽에 몸을 떨었다. 한씨 부자가 오전 3시반경 비명을 듣고 뛰쳐나갔을 땐 수목으로 덮여 푸르기만 하던 남산이 칼로 자른 듯 깎여나가 있었고 붉은 토사가 산밑에 사는 이웃 윤성만씨(58) 집위로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한씨는 귀를 진흙 위에 대가며 사람살리라는 소리가 새나오는 곳마다 파헤쳤다. 윤씨는 자신의 아반떼승용차와 함께 집에서 1백여m 떨어진 빌라앞 흙더미 속에서 발견돼 구조됐고 윤씨의 아내(51) 딸(27) 아들(25)도 윤씨 근처에서 잇따라 구조됐다. 그러나 어머니 최숙랑씨(82)는 아침 9시가 다 돼 집근처 축사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씨는 “빌라 앞 1백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쏟아지는 토사를 막아내지 못했다면 빌라까지 덮쳐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화군청이 있는 강화읍내는 지대가 얕아 6일 아침까지도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특히 중앙시장 일대 지하상가는 물이 2m 높이로 차올라 아예 내려가는 계단조차 보이지 않았다. 소방차 10여대가 동원돼 물을 퍼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곳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한종태(韓鍾太·60)씨는 “물만 차올라도 견딜 만하겠다. 그런데 만조를 타고 밀어닥친 개펄까지 방안과 가게를 가득 채워 손을 쓸 엄두를 못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마는 저지대 뿐만 아니라 고지대까지 덮쳤다. 강화읍 신문리 중앙교회 뒤편 주택가는 차라리 폐차장을 방불케 했다. 언덕빼기 도로 양쪽에 세워놓은 승용차와 트럭 20여대가 빗물에 쓸려내려가 2백m 아래 교회앞 공터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승재기자〉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