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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紙上 배심원평결]아이 데려오기 거르는 남편

입력 | 1998-08-12 19:18:00


▼아내생각▼

김혜진(28·㈜솔빛CD롬 사업부 대리)

대학 4학년 때 서울 신촌의 영어회화학원에서 형진씨를 만났어요. 96년말 결혼하면서 직장생활은 둘다 계속하기로 했죠.

지난해 말 아들 기석(9개월)이 태어났어요. 출산휴가가 끝나고 다시 직장에 나가면서 회사다니며 애를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걸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서울 개포동 집에서 차로 15분쯤 걸리는 곳에 사는 친정부모님께 도움을 청했어요. 지난해말 퇴직하신 아버지가 아침 저녁으로 아이를 차로 실어 옮겨주셨지요. 한달반쯤 되니 모두들 너무 힘든 것 같아서 아예 친정집에 아기를 맡겨두고 평일에 한번, 주말에 한번 데려오기로 했어요. 아버지가 볼 일이 있는 날에는 남편이 퇴근길에 차로 데려오기로 했죠.

그런데 남편이 평일저녁 약속한 날에 회식이다, 손님접대다 하면서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생기는 거예요. “오늘도 못 온다니?”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다보면 얼마나 화가 나던지….

저는 회식이 있더라도 일찍 빠져나와 친정집에 들러 기석이가 잘 때까지 보고 오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인데 그 정도도 못해주나 야속한 생각까지 들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정한 요일에 반드시 기석이를 데려왔으면 해요.

▼남편생각▼

정형주(29·LG생활건강 의약품사업부)

장인어른이 기석이를 집에 데려다 주시는 날이면 괜히 뒤통수만 긁게 됩니다. 장모님도 마찬가지죠. 아무리 예쁜 첫손자라지만 아기를 보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란 것은 압니다. 감사하다는 표현 한번 못하지만….

죄송한 마음에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저라고 기석이가 보고 싶지 않겠어요. 하지만 IMF시대가 시작된 뒤 무척 힘든 게 사실입니다. 제가 일하는 해외영업 쪽에 부하가 크게 걸리면서 야근 회식 고객접대가 많아졌어요. 저녁 때 처가에 들르려면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까지 합니다.

6월5일이 문제의 날이었죠.회식이 있었지만 일찍 끝날 줄 알고 9시쯤 가기로 약속했어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2차로 이어지면서 “못가겠다”고 전화를 할 수 밖에 없었죠. 마침 그날 장인어른도 선약이 있었고요. 아내가 무척 화를 내더군요. ‘못된 사위’가 되는 것 같아 죄송할 뿐입니다. 하지만 피치못한 경우란 있는 것 아닙니까.

아내가 빨리 시내연수를 받아 운전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주말에는 약속을 어긴 적이 거의 없어요. 평일 중 하루라면 사정 때문에 요일을 바꾸는 정도는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