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는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여론조사(13, 14일자 A3면)에서 나타난 지난 반세기 동안의 우리들의 삶과 정부의 모습을 전문가들의 눈을 통해 보다 엄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특별 좌담을 마련했다. 14일 본보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인하대 김대환(金大煥·경제학), 숙명여대 이남영(李南永·정치학), 연세대 유석춘(柳錫春·사회학)교수가 참석했다. 관심은 역시 역대정부 평가에서 박정희(朴正熙)정부가 수위를 차지한데 모아졌다.》
이교수〓정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국제사회에서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박정희시대가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한 것은 사실입니다.
유교수〓저는 요즘의 우리 상황이 이번 여론조사결과에 반영돼 있다고 봅니다. 민주화는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 상태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경제발전의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키운 박정희시대가 상대적으로 좋게 생각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몇년 후 경제가 잘돼 상황이 달라지면 평가가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김교수〓정치분야에서 국민은 한편으로는 민주화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그 과정에서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선호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정권 시절엔 절대빈곤의 극복처럼 국가의 목표가 단순하고 뚜렷했지요.
이〓박전대통령이 적재적소에 인재를 앉히고 권한을 준 뒤 그에 따른 책임을 엄정히 물은 용병술이나, 청렴을 지향하는 최고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국민에게 뚜렷이 인식시킨 것도 살펴볼 대목입니다.
김〓경제발전 문제는 더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 들어갔습니다만 사실은 박정권의 고도성장과정에서 이미 구조적인 문제가 배태돼 있던 것이지요. 그 시대의 경제발전을 해석할 때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유〓민주화와 산업화 또는 성장과 분배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초기에 근대화를 이룬 유럽과 미국을 제외하면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별로 없는 셈 아닙니까.
김〓박정권은 정치적으로는 냉전체제에 대한 대응, 경제적으로는 절대빈곤의 극복이라는 기치 하에 국민동원의 목표를 설정하고 돌진적인 성장체제를 가동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성장이나 안보 위주의 가치가 인권 등 민주적인 가치와 충돌하는 등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결국 유신체제가 해체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논의의 폭을 넓혀 역대 정부를 하나 하나 평가해보죠.
이〓이승만(李承晩)정부는 국가건설이라는 목표를 이뤄냈지만 개인적인 장기집권 욕심으로 정치를 후퇴시켰다는 인식 때문인지 평가가 아직도 엇갈립니다. 저는 여러가지 실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중심제 정치구조를 수립했고 다음에 온 정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삼권분립이 유지됐다는 점은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제 생각은 다릅니다. 건국은 했지만 분단의 출발이 됐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입니다. 북진통일을 당시 최고의 정책으로 삼았던 것은 시대착오적이었죠. 또 독자적인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하지 못했던 점도 한계였습니다.
유〓장면(張勉)정부는 학생혁명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5·16에 의해 무너져버린 아쉬운 시기로 간단하게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정부는 한마디로 불필요한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박정희정권의 정치적 유산을 바탕으로 등장해 광주학살을 저지르면서까지 군부독재를 연장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유〓전, 노정부에서는 정권을 지탱했던 이승만정부의 친일세력, 박정희정부의 군부와 기술관료에 이어 재벌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만들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합니다.
이〓김영삼(金泳三)정부에 대해서는 비판도 많지만 군부독재의 싹을 자르고 여야간에 평화적 정권교체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은 평가받아야 합니다. 금융실명제를 비롯한 일련의 개혁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사회가 관료나 군부 중심에서 시민 중심으로 넘어가는 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김〓김영삼정부가 현 상황 때문에 너무 매도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본격 시도했다는 것은 평가돼야 합니다. 다만 개혁의 파트너십이 취약했고 또 과거의 지도자들처럼 인치(人治)로 흐른 한계도 보여줬습니다. IMF체제로 가게 된 것도 그런 결과입니다.
이〓이번 여론조사에서 IMF체제가 가장 큰 정부실책으로 나타난 것은 피해의 범위가 넓고 고통도 컸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지금까지의 얘기를 정리해 보면 역대 정부가 경제발전과 민주화라는 두가지 목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양지’와 ‘음지’에 관한 얘기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는 학생에게, 또 어떤 때는 군부에 힘이 집중되기도 했습니다. 21세기는 다양한 집단들이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견제와 균형을 이뤄나갈 것입니다.
이〓이번 여론조사는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부분이 많은데 그것은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를 보는 것과 30년후에 현재를 보는 시각은 현저히 다를 수 있습니다.
김〓동감입니다. 역사는 연속선상에서 봐야 하고 주어진 여건을 감안한 종합적인 평가를 해야 합니다. 그것을 토대로 좀더 인내심을 갖고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김대중(金大中)정부는 김영삼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정부수립 50년을 맞는 현 정부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리〓한기흥·이철희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