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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박주현/국회가 국민의 뜻을 저버린다면…

입력 | 1998-08-14 19:56:00


국민이 국회와 정치권에 대해 불신하고 분개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실 웬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포기했다. 도덕적 책임감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 정치권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허공에서 메아리로 돌아올 뿐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입법 청원 운동과 세비 가압류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아직도 국회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바로잡아 보겠다고 하는 시민들의 끈질긴 노력이 그나마 우리 사회의 소망이요, 위안인 것이다.

이미 국회는 국민을 버렸다. 국회가 국민을 버린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을 버리고도, 아니 국민을 버려야만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정당 저 정당 눈치빠르게 가서 줄을 잘 서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정당 안에서 힘있는 계보를 파악해 자리를 잡아야 하며, 지역의 유지들과 좋은 관계를 갖고 돈을 잘 돌려 조직을 잘 관리해야 한다. 거기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고 시간이 남으면 지역이권사업을 따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공천을 보장받고 선거에서 표가 나온다.

국민 전체를 위한 정책이나 나라의 장래를 위한 제도를 만드는 데 열성을 다하는 의원은 아무래도 현재의 정치판에서는 적응력이 부족한, 경쟁력이 약한 국회의원이 되기 십상이다. 지금 나라가 흥망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수백만명의 실직자들과 수해로 인한 이재민들이 얼마나 큰 시련에 부닥쳐 있는지를 모르는 국회의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의 우리 정치인들에게는 정치권 내의 역학관계와 자신들의 영역 지키기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국회는 국민을 버렸고, 그래서 국민도 국회를 버렸다. 국민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며 아예 투표도 하지 않으려 한다. 국회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예사로 나오고 있고, 어쨌든 입법기관은 있어야 할 테니 ‘제2의 국회’를 만들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대의기관의 양 당사자가 서로를 저버리고 멀어지면 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이제 어떻게든 서로의 이해관계를 일치시켜야 한다. 억지로라도 국회의원들 정치인들이 국민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지금의 정치인들이 너무 부유하다. 가난했던 사람들도 정치를 하면 부유해지는 것 같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이 정치인이 될 수 있고, 정치인이 되고 나서도 부유해질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이 너도나도 정당인이 되어 정당운영에 관여하는 국민정당으로, 정당이 서로 다른 이념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정책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정책정당으로 되어야 국민과 국회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 국민정당이 되려면 정당가입 자격제한을 최대한 철폐하고 정당내 후보를 당원들이 선출하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정책정당이 되려면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보수당과 사회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진보당의 구도로 가야 한다. 그리고 정당에 대해서도 투표를 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곧바로 도입해야 한다. 국민과 국회의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국가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박주현(변호사·경실련 상임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