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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증언]「핵심 비켜가기」 이번에도 통할까

입력 | 1998-08-17 20:09:00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미 국민으로부터 높은 공직 수행 지지도를 얻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국정전반의 세세한 분야까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지엽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막힘없이 정확히 답변, 감탄을 자아내곤 한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에 이르면 클린턴은 어느새 평범한 중년남성보다 못한 기억력의 소유자로 변한다. 1월17일 폴라 존스 사건에 대한 증언에서 다섯시간 동안 그는 2백67번이나 기억력을 되찾는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그가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는 ‘모른다’는 뜻의 답변에서 같은 표현을 피하고 무려 56가지의 다른 표현들을 사용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위증을 피하기 위한 ‘모르쇠’ 작전의 하나. 클린턴대통령은 존스변호인이 “르윈스키와 둘만 있었던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그가 서류를 갖다주곤 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말로는 둘만 있었던 사실이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마냥 ‘모른다’라고만 하면 태도가 불성실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여기서 그의 현란한 말솜씨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걸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저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을 뿐”

“그에 관해 직접적인 지식이 없다.”

“따로 생각나는 게 없다.”

“내가 그렇게 했다면 생각이 날텐데.”

이렇게 답변을 피해나가던 클린턴대통령은 어떤 항목에 대해서는 “솔직히 모르겠다(I honestly don’t know)”거나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끔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대목이 있을 수도 있는 법이다.

이날 증언에서 그는 평소 자신감 넘치는 클린턴대통령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답변, 존스변호인들로부터 여러차례 크게 답변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92년 대통령선거전 때 영국 유학시절 마리화나를 피운 사실을 두고 당시 미국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내법을 어긴 사실이 없다”거나 “마리화나를 피운 사실은 있지만 연기를 들이마신 적은 없다”는 식으로 교묘히 곤경을 피해온 그의 답변술은 대배심증언으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