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주부학교’. 집이 어려워서, 오빠나 남동생만 배우면 되니까, 여자에겐 필요없다며 부모가 막는 바람에 공부를 하지 못한 ‘까막눈 주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피란민 자녀, 전쟁 고아, 극빈계층 아동을 위해 53년 설립한 일성고등공민학교가 모태. 경제여건이 좋아져 청소년 대신 성인 학생이 늘어나자 88년부터 일반사회교육시설인 주부학교로 바뀌었다.
학생수 3천여명. 1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층이 다양한데 40대와 50대가 가장 많다. 최고령은 68세 안정남씨.
대부분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살지만 일주일에 세번, 하루 4시간 수업을 들으려고 충남 천안시와 당진군, 강원 춘천시에서 꼬박꼬박 올라오기도 한다.
말 그대로 못 배운게 한(恨)인 이들은 마음속 동경의 대상이었던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같은 처지의 여성끼리 모여 얘기꽃을 피우다 보면 콤플렉스도 사라진다.
늦게 배운 만큼 공부하면서 느끼는 보람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이 크다. 66세의 김순연할머니는 입학 한달 뒤 치른 한자시험에서 성적이 우수해 상을 받자 자신도 모르게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교사에게 큰절을 올렸다.
조동화할머니(66)는 며느리가 학교에 자주 전화를 걸어 상담하면서 자신을 격려해 준다고 자랑한다. 춘천에서 올라와 공부하는 이건화씨(41)는 자녀에게 따로 영어와 수학을 배우면서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 한다.’ 소설 상록수의 한 구절에 가장 큰 감명을 받는다는 주부학생 6백89명은 19일 오전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졸업식을 갖는다. 신입생 모집은 3월과 9월 새학기 시작 전. 02―704―7402, 716―0608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