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金大中)후보가 당선하자 남모르게 기뻐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보청기업체 직원들.김대통령이 보청기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선거기간중 ‘건강 이상설’에 시달리자 TV토론에서 귀에 낀 보청기를 꺼내보이면서 “귀가 잘 안들려 보청기를 끼는 것 외엔 아픈 데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나이들어 보청기를 끼는 건 전혀 장애가 아니다”며 ‘보청기 옹호론’까지 폈다.
수많은 시청자 앞에서 김대통령이 보인 행동은 보청기 업계로선 최고의 ‘판촉효과’.
업계 관계자는 “보청기 사용을 일종의 신체장애로 생각해 잘 쓰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김대통령이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일거에 불식시켜줬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선 이후 보청기 판매량이 다소 늘어났다.
요즘 보청기 업계에선 ‘김대통령의 귀’를 잡으려고 물밑 경쟁중. 한 업체는 청와대에 자사 보청기 사용을 타진하기도 했다고.
김대통령이 현재 착용중인 보청기는 수년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구입한 2백만원 상당의 ‘스타키’ 제품. 세계적인 브랜드지만 사실은 국내 업체인 동산보청기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납품한 국산품이다. 그러나 정작 동산측은 조심스럽다. “대통령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어 이 사실을 광고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기껏 ‘세계 정상들이 착용하는’이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정도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