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가서 엄마로 변신한 박성희씨
“북한은 결코 통일 사회의 대안이 아닙니다. 폭력과 친북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한총련은 즉시 해체되어야 합니다….”
91년 한총련을 대표해 평양에 들어갔던 박성희(朴聖熙·29·경희대 4년 제적)씨가 19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선언’했다.
전대협 한총련을 대표해 북한을 방문한 뒤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에 머물다 최근 들어온 박씨 등 ‘범민족청년학생연합’ 대표 5명의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종로성당.
이날 기자들은 한총련의 전위 부대로서 북한을 넘나들며 연방제 통일과 미군 철수를 주장했던 투쟁가들이 자청한 기자회견이었기 때문에 모두 ‘관제 기자회견’이 아닐까하는 정도로 취재에 임했다.
그러나 96년 방북했던 도종화(都鍾華·24·연세대 3년 제적)씨가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는 A4용지 9장 분량의 글을 읽어내려가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우리가 가슴에 품었던 통일에 대한 감상적인 생각들은 북한을 직접 보고 느끼며 서서히 바뀌어갔습니다. 그들은 획일적이고 반민주적이었으며 그들의 체제를 수호하기에 급급했습니다. 통일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그들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91년부터 한총련과 북한 조선학생위원회가 공동으로 베를린에 개설한 범청학련 사무국에서 일해온 이들은 사상적 회의를 느끼면서 96년4월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그 해 12월 사무국을 자진 폐쇄했다.
길게는 7년, 짧게는 2년여 동안 이국땅을 떠돌던 이들이 귀국길에 오른 것은 김대중(金大中)정부의 해외공안사범에 대한 관용 조치 발표 이후. 정부 발표 이후 이들은 6월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했으며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통해 정부의 선처를 호소해 왔다.
독일에서 한국 유학생과 결혼, 이날 네살된 딸과 함께 회견장에 나온 박성희씨는 “이제 어머니로서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삶을 살아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한총련 학생들에게 “우리와 같은 불행한 젊은이들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회견장을 떠났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