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뇌사’상태에서 80일만에 소생해 후반기 원(院)구성을 마쳤다. 그러나 그 원구성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상당수 상임위원장에 전문성이 없거나 구설수에 올랐던 의원들을 앉히더니 상임위별 의원배정은 더욱 무원칙하게 내놓았다. 국민의 치솟는 분노에 밀려 가까스로 정상화한 국회가 고작 하는 일이 이렇다. 정녕 국회는 희망이 없는 곳인가. 의원들은 최소한의 양식도 없는 사람들인가.
무엇보다도 기아(起亞)비리로 검찰의 구속대상에 올라 있는 야당의원이 법률에 문외한인데도 법사위에 배정됐다. 소속정당은 그의 구속을 막기 위해 임시국회를 이미 두 차례나 소집했고 이번에도 또 소집할 움직임이다. 게다가 선거사범으로 재판에 걸려 있는 여야의원들도 법사위에 함께 배치됐다.
법사위 소속 의원으로서 사법당국에 압력이라도 넣어 구속과 엄중한 판결을 피하게 해보자는 것인지, 국회를 사법절차 방해장치나 도피처로 삼겠다는 것인지 그 발상이 의심스럽다. 야당의 처사는 회기중에 국회의 동의 없이 의원을 체포 구금할 수 없다는 헌법규정을 비리의원 보호도구쯤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건설업자 의원들이 건교위에, 지방 사학(私學)을 소유한 의원들이 교육위에 배치된 것도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 그런 의원들은 해당분야에 일정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고 겸직의원들의 유관상위 배정이 처음도 아니다. 그러나 여야가 시대적 과제인 개혁에 동참하려 한다면 이권비리 소지가 있는 유관상위 배정은 피할 만도 하다. 5공 시절에 비슷한 시도가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특히 연립여당이 수서(水西)비리 관련의원들을 건교위에 다시 배치한 것은 무엇으로도 변명하기 어려운 잘못된 일이다.
국회가 이렇다면 총체적 개혁을 통한 ‘제2의 건국’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그런 의원들에게 어떻게 개혁입법을 맡길 수 있으며 정치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래서는 안된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싶다면 의원들이 달라져야 한다. 여야 지도부와 의원들이 국회를 가볍게 보는데 어떻게 국민이 국회를 신뢰하겠는가.
의원들이 이미 투표로 선출한 상임위원장을 다시 뽑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재조정할 수 있다. 문제된 의원들이 스스로 상임위에서 물러나든지 아니면 여야 지도부가 상임위 배정을 다시 해야 한다. 그럭저럭 눈치나 보다가 시간이 지나면 여론도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의원들의 국민소환제를 입법화하려는 시민단체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 분노도 전혀 식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