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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이완배/농성장의 어린이들

입력 | 1998-08-19 19:18:00


“엄마, 무서워. 안싸우면 안돼?”

올해 8세인 수미가 어머니 윤미숙씨(32)를 붙들고 울먹인다.

남편이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데 맞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함께 농성을 한 지 한달여. 수미는 경찰과 엄마가 심한 몸싸움을 하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있었다.

절규하는 모습의 아빠와 엄마, 마스크를 쓰고 쇠파이프로 무장한 아저씨들, 진압봉으로 중무장한 수천명의 경찰아저씨…. 계속되는 긴박한 환경속에서 아이들도 변해가고 있었다.

동요나 유행가를 부르는 대신 ‘철의 노동자’ 등 노동가를 부르는 4,5세의 꼬마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부모와 함께 구호를 외치는 모습도 흔하다. 응석과 천진난만한 장난 대신 ‘투쟁’이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입에 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는 이들을 가슴아프게 했다.

“부모인 우리의 아픔은 더합니다. 우리라고 왜 아이들을 정상적인 환경에서 키우고 싶지 않겠습니까.”

“애 아빠가 직장만 다시 찾으면 아이에게 노동가 대신 동요를 부르게 하고 싶습니다.”

부모들의 하소연이다. 어린 자식에게서 함께 투쟁하자는 편지를 받고 통곡했다는 부모도 있었다.

어른들끼리의 긴장된 대치속에서 ‘농성장의 어린이’들은 겁에 질려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고 일부는 ‘어린 투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물대포와 최루탄, 헬기까지 동원될 경찰의 대대적인 진압작전에서 가녀린 아이들이 모두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이들만이라도 무사했으면….”

인근 주민들의 염려속에 한창 밝게 자라야할 어린아이들의 ‘농성’이 30일째 이어지고있다.

〈울산〓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