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 선언과 루블화 평가절하조치를 사전에 알았나 몰랐나?”
잦은 실언과 말뒤집기 및 술주정으로 종종 구설수에 오르는 옐친대통령이 또한번 국제언론의 조롱거리로 등장했다. “루블화 평가절하는 절대로 없다”던 14일 그의 공언이 사흘만에 거짓말로 드러나 망신살이 뻗치고 러시아의 대외공신력에도 큰 흠집을 남겼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18일 “옐친대통령이 14일 국가 장래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알고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누가 러시아를 통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특히 “옐친이 휴가중임에도 루블화 평가절하 가능성을 강력히 부인하는 성명을 냈던 14일 세르게이 키리옌코총리 및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협상을 맡은 아나톨리 추바이스 대통령특보 등은 루블화 평가절하를 단행키로 이미 결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옐친대통령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옐친대통령은 14일 휴가지인 노보고로드시에서 “루블화를 평가절하하지 않겠다는 나의 신념은 어떤 환상이나 바람이 아니고 모든 사실들을 파악한 후에 내린 결론”이라며 “금융위기가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휴가일정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었다.
그는 사흘후 키리옌코총리가 모스크바에서 루블화절하를 발표하자 휴가를 중단하고 급거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워싱턴포스트는 ‘옐친은 건강악화 등으로 국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고 꼬집었다.
국가원수인 옐친이 경천동지의 대조치를 사전에 몰랐거나 보고받지 않았을 가능성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러나 옐친의 14일 발언강도로 볼때 적어도 그때까지는 이 조치의 선택을 몰랐을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보인다.지난해 12월2일 스웨덴 공식 방문중 옐친은 “러시아는 일방적으로 핵무기 3분의1을 감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몇분도 지나지 않아 대통령대변인은 이를 “실언”이라고 해명해야 했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