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미국 ‘월드워치’연구소의 레스터 브라운소장은 ‘누가 중국을 먹일 것인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13억 인구가 살고 있는 중국은 공업발전과 함께 농업인구의 감소와 생산능력의 한계성 때문에 얼마 안가서 식량수입국이 될 것이며 중국이 지금보다 곡물을 10% 더 수입에 의존한다면 세계의 곡물 무역량은 중국의 수요에도 부족해 마침내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중국 조야가 이 글에 발끈했다. 중국의 식량문제는 중국이 걱정할 문제이지 브라운소장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자세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 양쯔강유역에 내린 폭우로 곡창지대가 물바다로 변해 중국의 올해 식량 생산량은 계획보다 11%나 감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다. 브라운소장의 경고는 단순한 경고 이상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브라운소장은 필자와 함께 한 자리에서 한국의 식량자급률 30%는 매우 위험한 수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의 게릴라식 폭우로 인해 우리나라도 많은 논이 침수되고 흙탕물에 휩쓸린데다 이상기후로 인한 냉해와 병충해로 금년 쌀농사 전망이 어두워 보인다.
지난해말 갑자기 IMF사태가 일어나자 밀가루 설탕 등 수입에 의존하던 식품들의 사재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4백만섬 이상의 재고미를 보유하고 있던 쌀만은 다행히 사재기 현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쌀도 환율상승으로 국제가격이 두배로 뛰었다. 만약 충분한 쌀을 확보하지 못해 우리가 수입할 물량이 늘어났다면 국제가격은 더 뛰었을 것이고 원화가치의 하락과 맞물려 더욱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식량안보를 가장 기본적인 국가문제로 생각하는 대통령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식량안보는 대통령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나라 경제를 이끌어 가는 엘리트들이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문제가 식량안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엘리트 중 많은 사람이 미국에서 공부한 분들이다. 그 결과 미국의 농업과 비교할 때 상대도 될 수 없는 비교열위 때문에 식량은 사다 먹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결론을 미리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두차례 세계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식량문제를 뼈저리게 느껴본 유럽의 선진국들은 어느 나라건 식량안보 문제를 제일 중요시하고 있다. 우리보다 농업 여건이 나쁜 스위스도 칼로리 기준으로 64%의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장미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스위스 국방부 앞의 잔디밭도 비상시는 식량안보를 위한 감자밭으로 바뀌도록 계획되어 있고 평시에도 일정량의 비축 식량은 모든 국민이 스스로 확보하도록 국민적 컨센서스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율곡선생의 ‘10만 양병설’을 우습게 알았던 조선조가 임진왜란의 참화를 겪어야만 했던 교훈은 비단 국방의 문제만은 아니다.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스산한 들녘을 바라보면서 식량안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직업을 잃고 노숙하면서도 농촌의 일은 힘들어서 싫다고 외면하는 오늘의 현실도 되새겨 본다.
원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