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0시반경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27묘역은 청년들의 눈물로 어느 때보다 숙연했다.
이 묘역의 주인공은 96년 한총련의 연세대 점거농성사건때 학생들이 던진 돌에 맞아 숨진 고 김종희(金鍾熙)의경.
당시 김의경을 숨지게 한 죄로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며칠전 광복절 특사조치로 풀려난 이승재(李承宰·29·당시 한총련 정책의장)씨 등 3명은 김의경의 기일(忌日)인 이날 현충원을 찾아 용서를 빌었다.
15일 이들은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사죄를 하기 위해 경기 수원시에 사는 김의경의 부모를 찾아갔다.
어머니 박귀임씨(46)는 아직도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듯 “왜 왔느냐”며 외면했지만 아버지 김수일씨(49)는 이들을 근처 음식점으로 데리고 가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그래도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맨먼저 여기를 찾아오니 고맙구나.”
김의경의 부모와 이들 세 청년은 21일 김의경 묘소 앞에서 참회의 눈물과 오열을 토하며 2년전 한으로 맺혔던 응어리를 하나 둘 풀었다. 어머니 박씨는 “우리 아들 묻혀있는 것 보니까 기분이 어떠니”라며 2년의 세월로는 아직도 용서하기에 부족하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격한 감정은 많이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조금이나마 과거의 고통과 어두운 기억을 씻어내는 만남이 끝난 뒤 김의경의 부모는 말없이 차에 올라탔고 세 청년은 떠나는 차를 향해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김의경의 묘소 앞에 단정히 선 세 청년의 목소리는 회한이 가득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지도부라는 이유로 옥살이를 하는 게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이렇게 만나뵈니 어떻게 사죄를 해야할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