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를 둘러싼 현대자동차 사태는 노동계출신의 국민회의 중재단이 노사 양측의 의사결정에 지나치게 깊이 개입해 오히려 타결을 어렵게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재단 7명중 정세균(丁世均)의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6명 전원이 노동계 출신.
여기에 노동부가 ‘중재단이 타결시키는 형태가 되면 노동행정 주무부처가 전국의 다른 사업장을 컨트롤하기 어려워진다’고 우려, 경쟁적으로 중재에 나서는 바람에 혼선이 가중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국민회의 중재단이 나서서 노조의 ‘정리해고 수용’ 명분만을 얻어내기 위해 처음부터 ‘노조만 설득하면 된다’며 매달리면서 회사측만 무리하게 압박, 재계의 반발을 샀다는 것. 또 이처럼 ‘정치적’해법을 구하는 중재단과 현대사태를 일관된 노동정책의 연장선상에서 해결하려는 노동부와의 보이지 않는 알력이 사태해결을 지연시켰다는 비판이 있는 것이다.
‘노동계’인사들로 구성된 정치권 중재단이 울산에 내려온 것은 18일 오후 6시반경. 이미 이기호(李起浩)노동부장관이 손을 들어버리고 정부차원에서 경찰력에 의한 수습으로 결론이 난 이후였다. 이 시점에서 청와대의 이강래(李康來)정무수석 등도 ‘물리력에 의한 타개는 위험하다’고 중재 요청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중재단은 20일 노사 대표를 따로 만나 ‘정리해고 인원을 2백50∼3백명으로 하고 당초 정리해고 대상에서 제외된 인원의 무급휴직 기간은 1년으로 하되 후반기 6개월은 재훈련을 실시한다’는 내용의 중재안을 제시했다. 노조는 그동안 요구해온 요구조건이 대부분 반영된 중재안을 21일 오전 6시30분경 수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회사는 중재안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정몽규(鄭夢奎)회장도 21일 기자들에게 “중재안은 노조 편향적”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회사의 반발이 예상외로 크자 이기호노동부장관이 나섰다. 22일 오후 이장관은 현장에서 국민회의 중재안 가운데 무급휴직 기간과 고소 고발 조항 등에 관해 회사와 재계의 입장을 반영한 또다른 중재안을 만들어 회사측에 제시했다.
중재단이 23일 오전 11시30분 “협상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힌 것도 사실은 이같은 배경때문이었다. 이렇게 되자 노조가 당황했다. ‘아군’으로 믿었던 국민회의 중재단이 빠져 나갈 경우 협상이 불리해질 것으로 판단한 노조는 중재단이 철수한 직후 노동부 중재안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전달해 노동부는 이날 낮 12시30분경 합의문을 발표하기로 하고 기자회견까지 준비했다.
그러나 김광식(金光植)위원장은 오후 4시 반경 다시 협상장에 들어와 고소 고발 즉각 취하와 무급휴가 1년 등 종전의 요구안을 회사측에던진뒤협상장을 나가버렸다. 그러다 밤11시 반경 노조측이 다시 협상장에 들어가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회사측은 이 과정에 국민회의 중재단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울산〓정재락기자〉jr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