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시간문제로 다가온 가운데 일본 베스트셀러 소설의 판권을 사서 영화화한 장길수감독의 ‘실락원’이 최근 촬영을 마치고 12일 개봉된다.
이미 일본에서 지난해 같은 소설을 영화화해 상영된 상태에서 개봉되는 한국판 ‘실락원’은 동일한 원작을 갖고 만든 한일 양국 영화의 품질, 관객 반응 등 여러 면을 비교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영화계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판 ‘실락원’은 한아미디어에 의해 이미 수입돼 있어 일본영화 금지 빗장이 풀리기만 기다리는 상태.
이 영화는 유부남과 유부녀의 불륜이라는, 어찌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와다나베 주니치의 소설은 일본에서 3백만부가 팔렸고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이 연출한 영화도 2백60만명의 관객을 모아 대히트를 기록했다.
국내 제작사인 아트시네마는 일본측에 원작료로 5천여만원, 영화판권을 먼저 따낸 국내 업자에게 수천여만원 등 총 1억7천여만원을 들여 간신히 제작권을 따냈다.
출세가도에서 밀려난 50대중반 유부남(이영하 분)과 단아하고 내성적이지만 몸속엔 뜨거운 피가 흐르는, 그러나 남편과의 차가운 결혼생활속에선 그 정열을 한번도 태워보지 못한 30대중반 여성(심혜진)의 사랑.
뻔한 스토리지만 원작은 지독할 만큼 탐미적이고 철저한 성심리묘사로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독자를 확보했다. 중간에 제삼자가 끼어들거나 뜻밖의 사건을 통해 절정과 결말을 맞이하는 대부분의 불륜 소재 작품들과 달리, 실락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 남녀의 성심리 변화를 끈질기게 따라간다. 정사(情死)를 향한 이들의 곡예에선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사랑을 분리시키기 힘들다.
한일 양국의 영화감독은 이같은 원작의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스크린에 담았다. 단 일본 ‘실락원’이 실내 세트를 많이 사용해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반면, 장길수감독은 야외촬영을 통해 보다 스케일이 큰 화면 위주로 영화를 이끌어갔다. 전체 내용속에서 유달리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성관계 장면의 농도는 한일 양국의 ‘실락원’이 비슷한 수준이라는 평가.
원작의 탐미적인 심리묘사를 장감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영상화시켜냈는지에 따라 또하나의 진부하고 야한 불륜 영화냐 아니면 새로운 ‘애인’신드롬의 탄생이냐가 판가름난다. 한일 양국 영화 연출의 경쟁력도 관객이 가늠할 일이다.
〈이기홍기자〉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