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달의 잠행 ⑭
휴게소 여자는 나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낮 내내 빈둥거리니까. 사실 시골 아낙들처럼 농사를 짓든지, 포도주 공장이나, 화원이나 제재소에 일하러가지 않는 한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수영장도 없고 도서관도 없고, 피부 관리실도 없고 백화점도 없고 영화관도, 영어나 스텐실이나 붓글씨 따위를 배울 문화센터도 없고 친구들도 없는 것이다. 여분의 시간, 잉여의 세월, 유보된 종말…… 내 인생은 항아리 속에 갇힌 빗물처럼 부패하고 있었다.
남편 호경과 나는 거의 2년 동안 제대로 섹스를 하지 못했다. 처음엔 그에 대한 원한 때문에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석달만에 나는 그를 받아들였다. 태백까지 달려갔다가 돌아온 날 밤이었다. 그러나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내가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흥분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끔찍한 두통 때문이었다. 두통은 너무 심각한 것이었고 때로는 구역질까지 동반했다. 그후로 오랫동안 나는 섹스를 두려워 했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두 몸 사이에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이제는 생경함과 혐오와 뿌리 깊은 냉담함과 무응답, 실패와 상처받은 육체의 환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은 내 몸속에 있는, 그의 육체를 조롱하는 긴 혓바닥이었다. 기껏 불빛의 조도를 낮추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한없이 자신을 다스리며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방향을 틀 때면 그 긴 혓바닥이 먼저 목구멍으로 쑥 올라와 차갑고 미지근한 욕지기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차라리 호경을 그 여직원에게 보내버렸더라면 그 뒤에도 생이 이처럼 어려웠을까? 차라리 내가 태백 같은 곳으로 정말 떠나버렸더라면 어땠을까? 동해안의 바닷가 여관에서 복도나 쓸고 햇볕에 이불잇과 수건을 씻어 널고 좁다란 방안에서 작은 문틈으로 손님들에게 칫솔이나 면도기를 건네주는 여자가 되어 살아버렸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나는 떠나지 못했다. 나는 두려워서 되돌아왔다.그리고 그를 떠나보내기는 커녕 금치산자처럼 그에게 더욱 더 의지했었다. 내가 아프고 연약하다는 사실을 그가 한 순간도 잊지 못하도록 폐부 깊숙이 인식시키는데 세월을 낭비했다.
그로 인해 생긴 사고였기에, 그가 뼛속까지 내 인생을 긁어 내버린 사건이었기에, 나는 어쩌면 원한을 가지고 커다란 벌레처럼 그의 머리 속에 드러누워 그의 생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변명같지만…… 그땐 사실 환자였기는 했다. 나는 머리가 아팠고 실제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픔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아픔으로 가득찬 자루처럼.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낮잠도 자지 않고, 머리도 실제로는 아프지 않다. 아픈 척하거나 아프기 시작할 거라고 지레 겁을 먹거나 아픈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혼란스러워 할 뿐이다.
나는 ‘구름 모자 벗기 게임’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그것은 무의미한 순간순간에 강박적으로 떠올랐다. 숲에서의 무시간과 같은 일탈된 순간들과 함께. 그를 만나고 싶었다. 숲에서의 시간을 다시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이라니, 무슨 신화의 패러디인가? 아니면 단순히 장난? 혹은 사랑에 대한 신냉소주의? 그도 아니면 자칭 수상쩍은 단독자의 사랑에 관한 신사적인 테러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