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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족 추락 「아줌마」 다시뜬다…「新여성층」 부각

입력 | 1998-08-31 19:24:00


“그 걸 왜 ‘펑퍼짐’이라고 표현하는 거지요? 남에게 피곤을 안겨주지 않는 편안함인데. 살아온 생활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내면에는 따뜻함이 살아 숨쉬고 있는데….”

요즘 천리안과 하이텔 PC통신의 ‘주부 동호회’에서는 아줌마들의 ‘제 모습 찾기’가 한창이다. ‘섹시함’이 미의 판단기준이 돼버린 90년대. 성적 매력을 잃어버린 존재로서 한때 남성으로부터 ‘기피대상 1호’로까지 몰렸던 아줌마.

그러나 시대의 거품이 걷히자 ‘처녀같은 몸매, 왕성한 소비욕구’를 자랑하던 ‘미시족’은 사라졌다. 이제 ‘직장일도 잘하고 가정일도 잘하는 슈퍼우먼’은 여성의 자아실현이 아니다. ‘생계를 위해 나서야 하는’ 현실이 돼버린 것. ‘미시’는 가고 ‘아줌마’의 시대가 돌아오는 것인가?

◇아줌마의 부활

CF에서는 20,30대 젊은 탤런트들을 제치고 전원주 김수미 엄앵란 등 전혀 날씬하지 않은 ‘진짜 중년 아줌마’들이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들은 힘차게 벌판을 달려가고, 가파른 산을 오르고, 자식보다 어린 젊은 남자와 사랑 연기를 한다.

IMF 체제에도 유일하게 불황을 타지 않는 장르는 ‘여성연극’. 손숙 정경순이 출연하는 ‘엄마, 안녕’의 낮3시 공연에는 1백여 좌석에 빈틈없이 들어찬 아줌마관객이 소리없이 훌쩍인다. 산울림소극장 예술감독 최윤일씨. “30대 이상의 남자관객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대학로 연극의 대부분은 20대를 위한 가벼운 ‘개그성’작품이다. 30,40대의 아줌마부대야말로 삶의 향기를 지닌 ‘무대 예술’을 지키는 주역이다.”

백화점 문화센터. IMF시대라 회원이 줄긴했어도 ‘무료 강좌’만큼은 아줌마들로 꽉찬다. ‘기억법’ ‘신문 NIE지도법’ ‘단전호흡’ ‘요리’…. 실용적인 교양을 쌓으려는 아줌마들의 눈빛이 빛난다.

서울 서초구 뉴코아백화점 주부 미술강사 조성민씨(32). “이제 밥만 먹고 집에서 편히 지내는 아줌마는 거의 드물죠. 교양을 쌓고 취미도 즐기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기위해 문화센터로, 취업강좌로 열심히 다닌답니다.”

◇아줌마의 힘

프랑스 관광청은 지난해 ‘아줌마(Adjumma)’를 “자녀를 다 키운 뒤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40대 이후의 한국 여성, 계를 부어 해외여행을 즐기고 왕성한 쇼핑을 하는 집단’이라 정의했다. 신종마케팅 용어로까지 등장했던 ‘Adjumma’는 한국이 IMF체제로 접어든 뒤 빛을 잃었다. 이제 한국의 아줌마는 ‘소비자’로서 보다는 ‘억척스런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결혼, 9개월된 아들이 있지만 ‘아가씨’ 소릴 듣는 주부 김미영씨(29·서울 노원구 상계동).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아가씨라 부를 때마다 ‘결혼해 아기도 있어요’라고 자신있게 말해요. 아줌마가 돼야 눈치 안보고 이것저것 골라가면서 알뜰하게 살 수 있거든요. 아줌마란 호칭은 ‘날 지켜주는, 그리고 내가 지켜야 할’ 아이와 남편을 생각하게 합니다.” 최근 남녀성인을 대상으로 한 광고업계조사에 따르면 36%가 ‘가사운영의 실권자’는 ‘주부’라고 응답했다. 이는 미국 10.5%, 일본 15.7%에 비해 3배가량 높은 수치.

◇아줌마의 말뜻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빈 자리에 몸을 날리는 민첩한 여인, 촌지 뿌리는 엄마, 과소비의 주범, 전화방에서 성적인 무료함을 달래는 유부녀…. 주부로서의 제대로 된 평가보다 매스컴에 의해 우스갯 이미지로 전락해왔던 ‘아줌마’. 그 호칭을 다시 생각해 본다.

연세대 국문과 남기심교수. “아줌마, 아주머니의 어원은 ‘앗’(다음, 버금, 둘째)과 ‘어머니’의 합성어로 ‘또 다른 어머니’란 뜻이다. 주로 숙모 고모 형수 등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웃집 부인도 ‘아주머니,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은 가족의 범위를 확대해 부르는 최고의 존칭어이다. 그러나 원뜻과는 달리 비하어로 들리는 것은 ‘아줌마’란 말에 사회적인 ‘편견’이 들어갔기 때문이 아닐까.”

〈전승훈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