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한국인은 올바른 교육을 받는 것이 곧 독립을 회복하는 초보(初步)라고 생각하였다….”
한 평생을 국사학자 교육학자 언론인으로서 항일 독립 투쟁을 선도했던 산운 장도빈(汕耘 張道斌·1888∼1963)선생이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돼 그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9월 한달간 펼쳐진다.
민족의 수난기인 1932년 동아일보에 66회에 걸쳐 ‘조선사’를 연재했던 산운 선생은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선생과 함께 대표적인 민족사학자로 꼽히는 인물.
선생은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한 뒤 대한매일신보 기자를 거쳐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에 가담,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주도했다. 특히 오성, 오산학교 교사 시절에는 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서 국사교육을 주창하며 민족사관를 주창했다.
그가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조선사’는 고구려 발해 등 민족의 기개를 떨쳤던 상고사를 중심으로 한민족이 언젠가 나라를 되찾으리라는 희망을 역사적 관점에서 서술했다. 당시 이를 읽거나 베껴 유포하는 행위는 일제에 의해 철저히 금지됐다.
선생은 3·1운동 당시 경성여고보(현 경기여고)학생으로 3·1운동을 주도했던 김숙자(金淑姿)여사와의 사이에 5남1녀를 뒀으며 4남 치혁(致赫)씨가 고합그룹 회장으로 사업을 통해 선친의 유업을 계승하고 있다.
장회장은 “선친께서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확신하고 계셨으며 아무리 어려운 때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투자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회고하면서 “모두가 어려운 지금 선친의 사상이 적잖은 교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3·1운동기념사업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은 1일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추모 행사 및 강연회를 개최하고 이날 오후에는 강동구 고덕동 선생의 묘소에서 추도예배를 열 예정이다. 독립기념관은 9월 한달 동안 산운 선생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특별 전시한다.
〈이 훈기자〉dreamland@donga.com